날조.
“그때 파우스트는 폴몬트 아카데미의 학생이었죠. 뭐였더라…… 아무튼 이쪽과 관련된 전공은 아니었어요.”
마침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던 때였다. 파우스트는 강당에서 특별 강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초청 강사가 어지간히 대단한 사람인지, 학원 전체가 떠들썩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알아본 끝에, 요즘 유행하는 어시스트로이드와 관련된 강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청된 강사는 피가로 가르시아. 폴몬트 라보라토리에 재직 중인 가르시아 박사는 어시스트로이드 연구 개발 전문가로서, 뉴스 방송 출연이나 인터넷의 전문 기사를 집필하고 있는 저명한 인물이었다. 그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던 파우스트조차 들어본 적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다.
가르시아 박사는 본인의 직무와는 관계없이 사생팬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연구원 답지 않게 이따금 수상한 사람이 꼬이는 것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역시 반반한 얼굴 탓일까, 그도 아니면 상냥한 목소리나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가. 아니면 누구에게나 친절한 성격이 원인일 수도 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쪽도 고아 출신이라고 한다. 어릴 적 하이클래스 가정에 입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부모가 사고로 죽으면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가지고 있는 재산 때문인지, 사회적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인지, 파우스트와 다르게 멸시당하지 않았다.
솔직히 어시스트로이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가르시아 박사에게는 조금 흥미가 있었다. 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권위자인 만큼 미래를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일단 들어두어서 나쁠 건 없겠다고 생각했다.
“반갑습니다, 미래의 이끌어갈 젊은 주역 여러분. 저는 폴몬트 라보라토리 소속 연구원 피가로 가르시아입니다.”
단상에 등장한 가르시아 박사는 아카데미 학생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실제로 만난 가르시아 박사는 미디어에서 접하던 것보다 훨씬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잡지나 영상 속 모습보다 실물이 더 잘생겼고,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어시스트로이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피로에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탄생한 커뮤니케이션 로봇입니다. 전 인류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희의 친구가 될 로봇이죠.”
시티에 자자한 명성이 사실인지, 강당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입구와 가까운 뒤편에는 몇몇 교수도 보였다. 연신 양해를 구하며 좁은 틈새를 힘겹게 밀고 들어간 파우스트는 기어이 맨 앞자리에 앉았다. 중간에 “이럴 거면 어제 나오지 그랬냐.” 같은 정체불명의 욕설도 들렸지만, 그쯤은 교양 있게 무시해 주었다.
“AI가 발달했던 시절, 인류는 로봇에게 노동을 맡기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노동 로봇이 다수 탄생했죠. 하지만 인류가 바라던 것은 사람을 대신해 노동을 할 로봇이 아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로봇입니다.”
그러는 동안 가르시아 박사는 강연을 이어갔다. 가르시아 박사는 어두운 실내에서 유일한 빛을 받았고, 나긋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는 강당에 설치된 최첨단 장비를 통해 증폭되어 귀에 쏙쏙 박혀들었다.
가르시아 박사가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기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반투명한 자료 화면이 떠올랐다.
“다양한 연구 결과, 노동은 인류를 피로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노동은 인류에게 있어 보람이며, 인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피로하게 하는 것은 인간관계였습니다.”
가르시아 박사는 보기 좋게 정리된 자료를 비스듬히 등지고,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듯이 말했다.
“어시스트로이드는 인간을 대신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로봇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 인사, 빈말, 교섭, 영업, 사죄, 애인과 헤어진 이야기까지…… 어시스트로이드는 저희를 대신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해줄 겁니다. 그들은 변호사가 되고, 비서가 되고, 친구가 될 겁니다. 때로는 애인이나 가족도요. 저희는 영원히 고독에서 해방된 겁니다.”
모두가 강연에 집중하는 듯,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보기 드문 무서운 집중력이었다. 가르시아 박사는 둘러앉은 청중들과 침착하게 시선을 맞추고는 활짝 웃었다.
“이쯤에서 분위기를 한 번 환기해 보죠. 질문이 있을까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손을 들었다. 가르시아 박사는 그중 한 명을 정중하게 가리켰고, 지목된 사람의 머리 위로 얕은 조명이 내리쬐었다. 그 학생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질문을 던졌다.
“어시스트로이드는 인간의 친구치고는 가격이 비싸지 않나요? 돈을 주고 친구를 산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데요.”
“여기에 어시스트로이드 하나 못 살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 어디 있어?”
주변에 앉은 학생들이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된다는 양 왁자지껄 웃었다. 아무도 자신을 꼬집지 않았지만, 근처에 있는 파우스트는 지레 찔린 것처럼 불편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가르시아 박사는 구둣발 소리를 내며 단상 위를 걸었다. 그러자 물결처럼 퍼져나가던 웃음은 뚝 그치고, 좌중은 금세 조용해졌다. 간단한 행동으로 이목을 끈 그는 새로운 자료를 띄우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물론 어시스트로이드의 가격은 상당한 편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가격을 합리적으로 낮추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용 효율적인 소재를 사용하더라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말이죠. 특히 지금 개발하고 있는 어시스트로이드의 경우, 본체만 있다면 언제든 부품의 교체 및 파츠의 추가가 용이하니 단기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무례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으나, 가르시아 박사는 당황하지 않고 유들유들하게 답했다. 흐르는 물처럼 차분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잔잔한 미소와 능숙한 응대에서 그간 차곡차곡 쌓아온 연륜이 느껴졌다.
“여러분은 살면서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그 사람과 함께했던 공간이 텅 빈 듯한 허전함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빈자리를 채우고 싶다고 느낀 적은요? 저희가 개발한 어시스트로이드는 정밀한 커스터마이징을 통해 추억과 유사한 형태를 구현하고, 여러분의 기억 속 그 사람과의 연결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저희의 로봇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관계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고, 더 나아가 상실과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지원할 겁니다.”
어시스트로이드라는 것은 하이클래스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그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감정 없는 깡통에 지나지 않는다. 파우스트는 여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가르시아 박사의 말을 듣고 있자면 한때 잃어버린 막연한 꿈이 떠올랐다. 가르시아 박사의 연설은 가슴 안쪽에 남아있는 상처를 약하게 찔러, 먹고살기 위해 구석으로 밀어둔 추억을 밝은 빛 아래로 끌어냈다.
“저희 폴몬트 라보라토리에서는 여러 기획을 진행 중이며, 하이클래스와 워킹클래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곧 발표할 예정입니다. 하이클래스 여러분들에게는 더욱 특별하고 의미 있는 만남을, 워킹클래스 여러분들에게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형태의 기회와 안정감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상 속에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 어시스트로이드에 대해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폴몬트 라보라토리의 피가로 가르시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강연은 어느새 끝이 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태도로 말을 마친 가르시아 박사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커튼콜의 배우처럼 과장된 인사였지만, 그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눈을 뜬 채 꿈을 꾸는 듯한 시간이었다. 강당을 가득 메운 우렁찬 박수 소리는 굵은 빗방울처럼 쏟아졌다. 파우스트는 강당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박수 세례는 지칠 줄 모르고 한동안 계속되었다.
가르시아 박사는 무대 뒤편으로 사라지고, 마침내 강당에 불이 들어왔다. 파우스트는 홀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뒤편으로 뛰어갔다. 등 뒤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파우스트 말고도 다수의 학생들이 비슷한 행동을 했던 듯싶다. 입구 쪽에 빠져있던 교수와 몇몇 학생들이 그들을 만류하고 있었다.
다들 그쪽에 한눈이 팔려 파우스트를 막는 사람은 없었다. 못 먹고 자란 탓에 덩치가 작은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가르시아 박사는 바로 랩으로 돌아가는지 에어바이크 앞에서 보호장구를 손에 들고 있었다. 푸른 하늘 아래 올곧게 선 그를 보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가르시아 박사는 모든 면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눈. 뜻을 품은 사람 특유의 별빛처럼 반짝이는 두 눈과, 당당하게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목소리가 아득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파우스트는 가르시아 박사를 통해 다시 한번 꿈과 미래를 엿보았다. 알렉과 마찬가지로, 가르시아 박사는 자체적으로 빛을 발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을 비추는 거울처럼,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특별한 존재였다.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선 가르시아 박사를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 그 생각은 한층 강해졌다.
무작정 뛰쳐나오긴 했지만, 막상 가르시아 박사를 목전에 두자 말문이 막혔다. 긴장으로 손에 땀이 배어났다. 파우스트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걸어가 가르시아 박사 앞에 섰다.
“저, 가르시아 박사님.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 개인적으로 여쭤볼 것이 있어서.”
“……너는?”
가르시아 박사는 슬며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변화였다. 파우스트는 그제야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는 서둘러 안경을 벗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 저는 인문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있는 파우스트 라비니아라고 합니다.”
안경까지 벗을 필요 없었다는 생각은 뒤늦게 들었다. 그러나 가르시아 박사는 그런 사소한 부분은 개의치 않았다. 가르시아 박사는 들고 있던 헬멧을 에어바이크에 걸쳐놓고 완전히 몸을 돌려 파우스트를 바라보았다.
“인문학? 그쪽 학부생이 내 강연을 들으러 오다니, 드문 일이네.”
“정말 유익한 강연이었습니다. 박사님의 강연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파우스트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고, 가르시아 박사는 그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이내 힘 있게 맞잡았다. 늘씬하게 눈매를 휜 가르시아 박사의 입가에는 그린 듯한 미소가 자리해있었다.
“그래, 만나서 반가워. 다른 학부생이 관심을 가질 정도라니, 내 강연이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거겠지?”
가르시아 박사는 파우스트의 손을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고 놓았다. 파우스트는 방금 전까지 가르시아 박사와 닿아있던 손을 반대쪽 손으로 감쌌다. ‘오늘 하루 씻지 말아야지.’ 묘하게 지저분한 생각을 하면서.
“파우스트라고 했나? 사실 나도 이 폴몬트 아카데미 출신이야. 그렇다면 너는 내 후배가 되겠구나.”
“박사님도요?”
“하하, 박사님은 무슨. ‘가르시아 씨’면 충분해. 아니면 ‘선배님’ 이란 호칭도 괜찮겠지.”
그렇게 말한 가르시아 박사는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젊어 보이고 좋잖아.”라고 덧붙였다. 떠다니는 바람이나 새처럼 가벼운 행실이 못 미더울 법도 하건만, 이상하게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매체에서 접하던 것만큼이나 무척 활동적이고 발랄한 사람이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호쾌했다.
“아까 물어볼 게 있다고 했지? 마음 같아선 열정적인 후배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오래는 힘들겠네. 잠깐이면 괜찮으니 뭐든 물어봐.”
“사실은,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요.”
가르시아 박사는 친절하기까지 했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강연을 할 때처럼 옅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파우스트를 주시했다.
파우스트는 예전부터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을 좋아했다. 그런 그에게 가르시아 박사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어른이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이상형을 만났기 때문일까, 자꾸만 얼굴에 열이 올랐다. 파우스트는 손을 들어 얼굴을 살짝 가린 채 가르시아 박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강연이 끝난 뒤, 파우스트는 저를 쫓아와서 많은 것을 물어봤어요. 로봇 산업의 향후 전망이라든지, 그런 건설적인 것들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알았죠. 아, 과연 워킹클래스구나. 출세까지는 아니어도 돈이 많이 필요하구나…….”
피가로는 한숨을 쉬며 왼쪽 이마를 문질렀다. 그는 다시 차단막으로 막혀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담당의는 피가로가 다리를 떠는 것을 보고 아직 손에 남아있는 그의 잔을 받아 갔다. 그러고는 살찐 고양이 모양의 전기포트를 들어 빈 잔에 따뜻한 에어차를 리필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버릇처럼 인사한 피가로가 잔을 건네받았다. 피가로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에 코끝을 적시더니, 잔속의 액체를 호호 불어 한 모금 마셨다.
“딱 봐도 돌아갈 가족이 있는 아이였죠. 뭐,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파우스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요. 괜히 이야기를 들어준 게 아니에요. 그 아이, 당시 폴몬트 아카데미의 간판 같은 존재였으니까.”
담당의는 피가로의 말에 동의했다.
“아, 이제야 기억나요. 저도 본 적이 있는 거 같네요. 폴몬트 아카데미는 워낙 유명한 학원이니까요.”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피가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썹 끝을 기운 없이 늘어뜨렸다.
“단지 워킹클래스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득바득 힘겹게 살아가는 것이 가엾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은 제게 당연한 것들에 대해 너무 많은 고민을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저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요. 사람의 운명이란 대체 뭘까요? 저도 스노우님과 화이트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그 애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가르시아 씨, 그런 극단적인 생각은…….”
피가로는 몸을 한껏 옹송그린 채 담당의의 말을 끊었다.
“아니지. 저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였으니 파우스트보다 상황이 나빴을 거예요. 어디선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겠죠. 인간의 아이는 자기 몸 하나 지키지 못할 정도로 한없이 무력한 생물이니까.”
타인을 동정하기도 잠시,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피가로는 곧장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담당의는 한숨을 삼키며 급격하게 퍽퍽해진 목구멍에 차를 들이부었다. 그러나 피가로는 귀신같이 눈치 채고는 발딱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 너무 제 얘기만 했죠? 맨날 같은 얘기뿐이라 지겨우실 텐데.”
“그렇지 않아요. 저는 가르시아 씨의 이야기를 듣고, 더 나은 방향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피가로는 담당의의 반응에 적당히 만족한 것 같았다. 그는 한결 편해진 얼굴로 엇나간 주제를 원래대로 돌렸다.
“아무튼, 그 뒤로 파우스트는 제가 다니는 연구소에 입사했어요. 아마 전공을 바꾸었겠죠.”
“폴몬트 라보라토리 말이죠?”
“네, 그때 이후로 두 해쯤 지났을 거예요. 폴몬트 라보라토리쯤 되는 대기업에 입사하기엔 이례적으로 이른 나이였죠. 물론 저만큼은 아니지만.”
“가르시아 씨는 모두가 알아주는 엘리트니까요.”
피가로는 예상치 못한 칭찬이 기쁜지 희미하게 웃었다. 스웨터에서 삐져나온 털실처럼 푸스스 미소 짓는 그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제가 그 애의 인생에 관여하게 되었다는 게 참 기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더라고요. 파우스트를 특별하게 생각했어요. 그 애는 말뿐 아니라 정말로 저를 잘 따랐거든요. 아, 적당한 비유가 생각이 안 나는데…… 그래, 마치 제 제자 같았어요.”
가르시아 박사의 강연을 듣고 몹시 감명받은 파우스트는 그 길로 진로를 시원하게 바꾸었다. 폴몬트 라보라토리에 입사해 가르시아 박사와 함께 뜻을 펼치고 싶었다.
어느 때고 세상은 녹록지 않아서, 과학은 발전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더 고립되어갔다. 상실의 상처를 치유하고 고독에서 벗어난다는 취지는 파우스트의 심금을 울렸다. 가르시아 박사는 인류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그를 돕고 싶었고, 오래전 허무하게 잃어버린 친구와 재회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타인의 특별함에 자아를 의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상실의 슬픔을, 고독의 아픔을 이해하는 사람의 곁에서 힘을 보태고 싶었다.
큰 뜻을 품은 사람을 하늘이 돕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전과를 마친 뒤로 그간의 고생이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꾼 학부에서 파우스트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를 사귄 것은 알렉의 사후, 처음이었다.
레녹스는 한 학년 선배이자 아카데미의 장기재학코스 출신이었다. 늦은 나이에 입학했다던 그는 파우스트보다 서너 살 많았다. 정확히 나이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그랬다. 레녹스는 하이클래스답지 않게 사람 됨됨이가 굉장히 훌륭했다. 다소 무뚝뚝하긴 해도 기본적으로 서글서글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레녹스는 자기보다 후배인 파우스트를 깍듯이 대하고 챙겨주었다. 파우스트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레녹스가 원래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적어도 파우스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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