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2권 part.3 외전


번외.

별이 총총 뜬 하늘에 거대한 재앙이 드리운 야심한 밤, 누군가 마법관 4층에 위치한 파우스트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파우스트님, 들어가겠습니다.”

농담이라고는 조금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딱딱하고 정중한 목소리였다. 그 소리를 들은 파우스트는 익숙한 느낌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파우스트는 읽고 있던 책을 책갈피를 끼우며 대답했다.

“들어와도 돼.”

허락을 받은 레녹스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레녹스는 웬일로 평상복이 아닌 잠옷을 입고 있었다. 잠옷 차림의 레녹스를 보는 건 처음이 아니었지만, 매번 볼 때마다 잘 어울리고 귀엽다고 생각해버린다.

“실례하겠습니다.”

사심을 가득 담아 레녹스를 쳐다보던 파우스트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파우스트는 버릇처럼 안경을 고정하며 겸사겸사 흘러내린 숄도 추슬렀다.

“어서 와, 레노. 기다리고 있었어.”

파우스트는 벌떡 일어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방금까지 앉아있던 자리였다. 레녹스는 융숭한 대접에 당황했다.

“왜? 앉지 않고.”

“파우스트님이 앉으십시오.”

파우스트는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그의 시선이 레녹스에게서 하나뿐인 의자로 이동했다. 아, 깨달음을 얻은 파우스트가 침대 옆을 턱짓했다.

“의자가 하나밖에 없어서 그런가? 괜찮으니 앉아. 저쪽에 하나 더 있으니까.”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레녹스를 만류한 파우스트는 멀리 있는 의자를 쳐다봤다. 그러자 저절로 허공에 떠오른 의자가 침대를 넘어 천천히 날아왔다. 날아온 의자는 파우스트의 옆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눈치 볼 필요 없어. 우리는 더 이상 주종 관계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랬었죠, 그렇지만…….”

“그렇지만 같은 건 없어. 자, 레녹스, 앉아라.”

파우스트는 레녹스에게 거듭 자리를 권한 뒤, 제 몫의 의자에 앉았다. 더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어진 레녹스는 준비된 자리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처음 초대받은 것도 아닌데 매번 딱딱한 태도였다. 파우스트는 그제야 미간에 힘을 풀고 주문을 외웠다.

“《사틸크나트·무르크리드》.”

그 순간, 탁자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작은 꾸러미가 커지기 시작했다. 정갈하게 묶인 꾸러미는 머지않아 탁자를 채울 정도로 커지더니, 알아서 매듭이 풀어졌다.

“……파우스트님, 이건?”

넉넉하게 묶인 꾸러미 안에는 음식이 가득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낯익었다. 두 사람 모두 좋아하거나 즐겨먹는 것들이었다. 같이 식사나 반주를 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자신의 식성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하나 신경 쓰이는 점이 있다면 음식의 출처인데, 그에 대해서는 짚이는 바가 있었다. 현자의 마법사 동료이자 파우스트와 같은 동쪽의 마법사, 모두의 식사를 책임지고 있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네로의 얼굴을 떠올린 레녹스가 감사 인사를 전할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파우스트가 “레노.” 하고 이름을 불렀다. 멍한 눈빛을 보니 레녹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파우스트는 그 오해를 정정해 주었다.

“네로가 아니야. 거리에서 사 왔어. 아무리 그래도 이런 개인적인 일로 다른 사람을 고생시킬 순 없으니까.”

“그렇군요.”

레녹스는 늘 그렇듯 쉽게 긍정했다. 애초에 파우스트의 말에 이견을 제시한다는 발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열기를 머금은 그릇을 만지며 말했다.

“아직도 온기를 띠고 있네요.”

파우스트는 피식 웃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순진한 말이었다. 그래도 차갑게 비웃을 기분은 들지 않았다. 하물며 그 말을 한 사람이 레녹스라면 더더욱.

“레노, 잊은 거니? 우리는 마법사다. 조리된 음식을 갓 만든 것처럼 온기를 유지하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파우스트는 맞은편에 앉은 레녹스에게 식기를 건넸다.

“레이타 산맥에서 지낼 때 그런 기본적인 마법조차 사용하지 않았던 건가?”

“……그렇네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피가로님이 가끔 사용하시는 걸 본 적은 있지만요.”

“마법사가 이렇게 마법을 멀리하다니, 정말 큰일이군. 어서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네, 그래야겠죠.”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레녹스가 자신보다 연상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물론 기나긴 마법사의 생애에 고작 십여 년의 나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주종 관계를 그만둔 마당에, 이런 충고를 하는 게 조금 건방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그럼에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쪽의 나라에서는 괜찮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거대한 재액에 맞서 싸우는 현자의 마법사였다. 올해는 특히 마법관에서 합숙하며 깊은 인연을 맺어온 만큼 지난번 같은 변고가 생기면 곤란했다.

파우스트는 차분하게 술병을 열었다. 오늘을 위해 샤일록에게서 특별히 받아온 와인이었다. 같은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끼리 지나간 일을 되새기며 회포를 풀기에 좋은 술이라고 했던가.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말대로 상등한 품질이었다. 오랜 친구이자 은인에게 대접하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열린 입구에서 달콤한 향기가 빠져나와 코끝에 감돌았다. 레녹스는 눈치껏 잔을 내밀었고, 파우스트는 바로 그 잔을 채워주었다.

“레녹스, 방법은 무한하니 생각에 제한을 두지 마.”

뒤이어 자신의 잔을 채운 파우스트는 레녹스와 가볍게 잔을 부딪친 다음, 한 모금 머금었다. 지나간 추억을 되새기는 술이라, 그래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주 멀고 아득한 과거의 일이 떠오른 것은.

“마법은 마음으로 쓰는 거야. 그러니 상식에 얽매일수록 약해질 수밖에 없어. 어느 때고 상상을 멈추면 안 돼. 너의 마음속에서 네가 바라는 일은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다.”

파우스트는 한 손으로 적갈색 와인이 출렁거리는 잔을 흔들며 다른 손으로 탁자 위에 보이지 않는 표식을 덧그렸다. 마치 아주 작은 마법진을 그리듯이.

레녹스는 파우스트의 말을 가만히 새겨듣다가,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좋은 말씀이네요.”

“……그렇지? 제법 폼을 잡긴 했지만. 뭐, 결국 나도 어디서 들은 말에 불과해.”

파우스트는 레녹스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객관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조언을 해준 사람을 떠올리면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오늘의 주역은 그 사람이 아닌 레녹스니까, 계속 우중충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파우스트는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누군가를 지워내며,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이미 예상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이렇게 너를 부른 건 네게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싶어서야.”

“인사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만…….”

“역시 좀, 느닷없었으려나…….”

스스로 느끼기에도 갑작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래서야 어쩔 수 없이 멋쩍은 기분이 되어버린다. 파우스트는 괜스레 안주를 집어먹었다. 영문을 모르는 레녹스도 덩달아 열심히 안주를 먹었다. 간단하게 준비한 오믈렛과 수프를 절반가량 먹어치웠을 때였다.

파우스트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늘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언제나 네게 도움만 받는 것 같다.”

레녹스는 안색을 흐렸다. 기실, 인사를 하기 위해 불렀다고 할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파우스트에게 인사를 받는 것은 못내 마음이 불편했다. 당초 감사 인사를 받을만한 행동을 했는지부터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뇨, 당치 않습니다. 전에도 제대로 전해주셨는걸요.”

“말한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건 자주 말할수록 좋겠지.”

“긍정적인 기운을 나누자는 말씀이신가요?”

“뭐, 비슷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사를 전하는 파우스트의 안색이 굉장히 온화하다는 것이다. 부드럽게 미소 짓는 그에게서 부정적인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레녹스는 잔 밑바닥에 고인 술을 단숨에 들이켜는 파우스트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파우스트님, 임무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우풉.”

그리고 파우스트는 마시던 술을 살짝 뱉었다. 레녹스는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파우스트가 손을 들어 말렸다.

“미, 미안하다. 추태를 보였어.”

파우스트는 연신 잔기침을 하며 탁자에 흘린 미량의 액체를 황급히 닦아냈다. 얌전히 착석한 레녹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역시 피가로 선생님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피가로님, 아니, 피가로와는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런가요.”

레녹스는 집요하게 캐묻지 않았다. 비록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사소한 일로 파우스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듯했다. 파우스트는 습관처럼 금욕적으로 구는 레녹스를 보고 미간을 짚었다.

“큰일은 아니었어. 임무를 하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해졌지.”

“…….”

그 말 한마디로 레녹스는 대번에 침통한 낯이 되었다. 은은한 자책이 서린 얼굴을 보며 파우스트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 파우스트는 최선을 다해 레녹스를 위로했다.

“네가 그런 얼굴 하지 않아도 돼. 덕분에 오히려 홀가분해졌으니까.”

“그런 거라면 다행이네요.”

다행히 레녹스는 금방 표정을 풀었고, 파우스트는 소리 없이 안심했다. 모처럼 자리를 마련했지만, 옛날이야기는 여전히 서로에게 지뢰밭이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곤란해졌다. 일단 인사를 전하긴 했으니 만족해야 하나. 골이 아파진 파우스트가 미간을 문지르는 동안 레녹스는 자신과 파우스트, 두 명분의 빈 잔을 채웠다.

반사적으로 잔을 부딪친 뒤, 다시금 혀를 축였을 즈음이었다. 불현듯 방 안에 가득한 거울에 눈길이 갔다. 레녹스는 양쪽 벽면을 빼곡히 장식한 여러 개의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맞은편에 있는 거울은 파우스트의 뒷모습을 비스듬히 비췄고, 또 다른 거울은 멀고 흐릿하게 옆모습을 비추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들이었다.

파우스트의 마도구는 거울이었다. 마도구와 관련된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 파우스트에게 거울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눈매를 누그러뜨린 레녹스는 입술을 달싹였다. 특별히 할 말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레노, 파우스트를 부탁해.’

제 손을 감싸던 누군가의 손을 떠올렸다. 땀이 배어난 양손이 절박하게 레녹스의 손을 가두었고, 아침햇살만큼이나 눈부시게 빛나는 새하얀 머리카락은 그늘 아래에서 칙칙하게 물들었다.

‘나는 파우스트를 도울 수 없어. 모두가 내 동태를 주목하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내가 직접 움직이는 건 더 큰 반발을 부를 뿐이야.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도, 파우스트를 구하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어야만 해.’

이렇게 낮은 자세는 알렉이 새로 얻은 명예로운 지위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친근한 애칭을 부르며, 한없이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건넸다.

‘이렇게 못난 사람이라 면목이 없구나. 내가 누구보다 앞장서서 파우스트를 지켰어야 했는데…….’

죄스럽게 고개를 숙인 알렉은 레녹스의 손에 열쇠를 쥐여주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열쇠였다. 자잘한 흠이 많고 투박한 그것은 필히 파우스트가 갇혀있는 감옥 문을 여는 열쇠일 터였다.

레녹스는 알렉이 강제로 쥐여준 열쇠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이성을 잃을 정도로 절박한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레녹스의 결연한 표정을 확인한 알렉은 한순간 눈썹을 내리며 우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짐과 여비는 넉넉히 준비해두었어. 이걸로 문을 열고 파우스트를 구해. 그리고 이 나라에서 최대한 멀리 떠나렴. 지금보다 왕권이 안정되면 그때 다시 돌아오는 거야.’

알렉은 짧은 침묵 끝에 ‘하지만.’ 하고 말을 덧붙였다. 질끈 눈을 감았다 뜬 그는 수족이 잘려나간 것처럼 몹시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일로 만약 파우스트가 나를 원망한다면, 그래서 나를, 이 나라를 영영 등지고 싶다고 한다면…….’

그때는 돌아오지 않아도 돼. 알렉은 그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레녹스는 그가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은 전해진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그 사람에 대해 마냥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레녹스는 아직도 그 일을 믿기 힘들었다. 레녹스가 끝내 파우스트를 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렉은 끝까지 화형을 늦추지 않았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형벌을 집행하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레녹스의 실패를 알지 못했던 걸까? 파우스트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마음으로 친구를 산 채로 불태우는 일에 망설임 없이 동의한 걸까.

아마 영원히 답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알렉의 말대로, 마법사에 비해 인간의 일생은 짧았다. 그러니 별에 운명을 겹치는 마법사들의 마음도, 그 상처를 평생 안고 갈 파우스트의 마음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파우스트와 레녹스 또한 알렉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마음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날 알렉이 건넨 열쇠가 자신의 마도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 큰 미련과 집착을 오랫동안 놓지 못할 줄은, 그리하여 사백 년간 파우스트를 찾아 헤매게 될 줄은. 마도구에 얽힌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지만, 레녹스는 그것을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단 하나 명심할 것은, 서로 등을 맞대고 뜻을 함께하던 그 마음에, 자신이 사라진 후에도 소중한 친우를 잘 부탁한다며 기꺼이 허리를 숙이던 그 말과 행동에, 한 점 거짓이 없으리라 믿는 것뿐이다.

무릇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 당장 작년까지만 해도 파우스트와 재회하고, 이렇게 마주 앉아 대작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 않았던가. 레녹스는 파우스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레노, 뭐 하는 거지?”

갑작스러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파우스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늦게 파우스트의 눈에 자신이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직하고 성실한 레녹스는 지체 없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뇨, 꿈이 아닌지 확인하려고…… 현자님의 세계에선 이런 식으로 꿈과 현실을 구분한다고 해서요.”

“싱겁긴.”

두 사람은 말없이 술잔을 나누었다.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는 그 자체로 굉장히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나 앞으로의 일 등을 평범한 일상에 녹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이었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늘은 마법관의 바도 휴업하는 날이었고, 고된 임무를 다녀온 샤일록과 무르는 일찍이 방으로 들어갔다. 애초에 누군가가 돌아다닐만한 시간이 아니었다. 괜히 서성거리는 북쪽 마법사일 수도 있지만, 그 가능성은 현저히 낮았다.

마침 같은 생각을 했는지, 파우스트와 레녹스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기분 탓일까,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듯했다. 레녹스가 무언가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을 때였다. 문이 끼익, 경첩 소리를 내며 조용히 열렸다.

“…….”

“…….”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조명 하나 켜지지 않은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문 모퉁이를 붙잡은 손만 유독 하얗게 두드러졌다. 당장 귀신이 튀어나올 것처럼 기괴한 분위기였다. 숨 막히는 침묵이 계속되는 와중에, 누군가가 문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

“…….”

레녹스의 시선이 파우스트에게 가닿았다. 그 얼굴은 마치 ‘어떡하죠?’라고 묻는 듯했다. 파우스트는 문 너머에서 얼굴을 반쯤 내민 사람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피가로.”

“…….”

피가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문 뒤에 절묘하게 숨은 피가로는 콧등까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미하게 찌푸려진 눈썹과 책망하는 듯한 눈빛만큼은 확실히 전해졌다.

‘나만 빼고 이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니!’

들린다, 들려. 루틸과 미틸에게 앙탈 부릴 때와 같은 코맹맹이 소리가. 실제로 파우스트보다 피가로의 성가신 부분을 더 잘 아는 레녹스는 곤혹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째선지 파우스트는 이 상황을 해결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는 부러 음식이 차려진 탁자를 곁눈질했다.

“당신이 먹을 건 없어.”

“…….”

말을 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정말 순수하게 식성의 차이를 얘기하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실제로 피가로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가늘게 떴다. 여러 색이 혼합된 독특한 눈이 탁자 위의 음식을 빠르게 훑었다.

오늘의 피가로는 어딘가 이상했다. 무척 조용하고, 반응이 없었다. 평소 상대를 제멋대로 휘두르기 위해 과장된 행동을 하며 불필요한 말까지 서슴없이 나불거리던 그답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이쯤 되니 걱정이 앞섰다.

“이봐, 피가로…….”

레녹스에게 무언의 동의를 받은 뒤, 합석을 제안하려 했지만 그 직전, 피가로가 파우스트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방문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게 닫혔다. 피가로가 떠나고 방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파우스트와 레녹스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황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복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어둠만이 일렬로 늘어져 있을 뿐, 그들이 찾는 피가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새 가버렸나…….”

“내일 사과합시다.”

“뭘 사과까지야. 그럴 필요 없어.”

두 사람은 문을 닫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잠깐의 소란으로 잊어버린 화제를 간신히 되살려 이야기를 재개했을 즈음, 아래층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왔다. 우당탕 쿵, 탕, 무거운 물건을 뒤집어엎는 소리에 놀란 파우스트가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내려다봤다.

“이번엔 또 뭐지?”

“이 늦은 시간에도 아래층이 소란스럽네요.”

파우스트는 금방 아래층에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밑이라면 레녹스의 방이지만, 맞은편에는 서쪽의 마법사의 방이, 그 옆엔 네로의 방이 있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파우스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마 네로일 거다. 야식을 노리는 이들이 종종 출몰하곤 해. 자주 찾아가는 밤손님도 있는 것 같고.”

“그렇습니까.”

다행히 아래층의 소음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위층까지 울리던 심상치 않은 소리는 거짓말처럼 금방 사라지고, 평온하고 고요한 밤이 찾아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방문이 열렸다.

벌컥 문을 연 것은 피가로였다. 한 손에는 카르파초가 얹힌 접시를, 옆구리에는 길쭉한 술병을 끼고 있었다. 만면 가득 자신만만한 웃음을 띤 그는 허락도 맡지 않고 멋대로 방으로 들어왔다. 반 박자 늦게, 지지대가 사라진 문이 쿵 소리를 내며 저절로 닫혔다.

피가로는 자기 방처럼 들어와 마법으로 의자를 불러냈다. 허공에 뿅 하고 생긴 의자가 딱딱한 바닥에 폭삭 떨어졌다. 말 한마디 없이 당당하게 자리에 앉는 그를 보며 파우스트는 말문이 막혔다. 황당한 것은 레녹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두 사람은 별 희한한 것 보듯 피가로를 바라보았고, 피가로는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져온 물건을 탁자에 올리며 본격적으로 자리를 깔기 시작했다.

“밋밋하고 평화로운 자리에 분위기를 띄워줄 감초 등장. 실례할게.”

“…….”

피가로는 특유의 느물거리는 태도로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이 정도로 뻔뻔하니, 지적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할 말을 잃은 파우스트와 레녹스는 그저 맥 빠진 소리를 냈다. 파우스트는 오늘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과 함께 깨끗한 잔을 불러냈다. 피가로 몫의 잔을 채워주며 그가 가져온 카르파초를 턱짓했다.

“……그건?”

“주방에 가서 가져왔어.”

“이 시간에 카르파초를?”

“뭐어, 나도 카르파초 정도는 만들 수 있다고.”

“요리를 할 줄 아셨군요.”

“기본 정도는.”

파우스트가 따라준 술을 든 피가로가 어깨를 으쓱였다. 목울대가 꿀꺽꿀꺽 넘어가고, 적갈색 와인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파우스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나 다를까, 안주를 가져온 보람도 없이 앉자마자 술부터 위장에 쏟아붓는다. 하여간 술 버릇이 나쁜 남자였다.

그나저나, 카르파초가 기본적인 요리였던가?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의문을 품었다. 분명 남쪽 나라에 있을 때는 스스로 만들지 못했던 것 같은데. 레녹스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으나, 굳이 호기심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직후 피가로는 레녹스와 시선을 맞추며 눈을 찡긋거렸다.

“그것치고는 꽤 제대로 된 모양새인데. 정말 당신이 한 것 맞아?”

“넌 예나 지금이나 의심이 많구나. 궁금하면 먹어볼래? 자, 아~.”

“……됐어. 별로 좋아하지 않아.”

“레노는?”

“저도…….”

카르파초를 한 점 집어 두 사람에게 내밀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피가로는 거리감을 느끼는 반응을 즐기면서 카르파초를 자신의 입에 넣었다.

“에이, 아쉽네에. 그럼 모두에게 외면당한 가엾은 흰 살 생선은 내가 전부 먹어줘야지. 암냠.”

“꼭 그런 소리를 내야 해?”

“냠냠.”

“하…… 됐다.”

어떻게 된 게 하지 말라고 하니까 오히려 더 했다. 급격히 피곤해진 파우스트는 더 이상 상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재빨리 말을 돌렸다.

“저, 피가로.”

“응?”

“아까는 내가 심했어. 반성하고 있다.”

피가로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길게 뜸을 들였다.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는 것으로 보건대, 사과를 하는 이유에 대해 전혀 짚이는 바가 없는 듯했다. 역시 괜히 사과했나. 파우스트가 직전의 행동을 후회할 때였다. 음식물을 꿀꺽 삼킨 피가로는 “아하.” 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뭘 반성까지야. 그래도 조금은 상처받았을지도. 이 나를 주린 배를 부여잡고 주방을 기웃거리는 길고양이 취급하다니.”

“그건 아니야.”

“뭐가 아니야?”

“고양이, 아니라고.”

파우스트는 서리가 내리는 얼굴로 단호하게 일축했다. 어느 때보다 또렷한 목소리였다. 한 번쯤은 긍정해 줄 법도 한데, 지나치게 엄격하고 까탈스러운 제자였다. 피가로는 입을 댓 발 내밀고 툴툴거렸다.

“그냥 적당히 맞장구쳐줘도 될 텐데. 재미없어. 레노,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에.”

“이거 봐, 영혼이 전혀 없잖아. 누가 칭호조 아니랄까 봐, 두 사람은 같은 편이구나. 외롭네에.”

“칭호조? 그게 뭐야?”

“나도 몰라. 현자님이 가끔 그렇게 말하더라고.”

“현자도 참…….”

파우스트는 어딘가 조금씩 엉성하게 구는 현자를 떠올렸다. 현자가 엉뚱한 구석이 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나고 자란 세계가 아예 달라서 그런가, 사소한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 사이, 레녹스는 피가로의 잔이 비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의 잔을 채웠다.

“한 잔 더 드세요.”

잔이 다시 채워진 세 사람은 말없이 잔을 부딪쳤다. 유리가 부딪치는 맑은 소리와 함께, 그들은 지난 사백 년의 공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금방 새로운 주제를 찾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중앙의 나라 마법관 4층에 위치한 파우스트의 방에서는 밤새 시끌시끌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이른 아침, 평소처럼 눈을 뜬 파우스트는 가장 먼저 머리를 붙잡았다.

“윽, 머리가…….”

지독한 숙취에 골이 지끈거렸다. 이번에는 확실히 전날의 과음이 문제였다. 취해서 이성이 날아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위기에 편승해 적잖이 마시기는 했다. 마지막에 잔뜩 취한 피가로를 들쳐 업고 나가던 레녹스를 배웅한 기억이 남아있었다.

파우스트는 마법을 써서 숙취를 가라앉혔다. 어제 이런 기본적인 처치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상당히 취기가 올랐던 듯싶다. 그는 차림새를 다듬고 밖으로 나갔다. 아래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으니, 마법관 뒤편에 있는 길고양이들이 떠올랐다. 종종 현자나 카나리아가 돌봐주기는 하지만, 점점 날이 점점 추워지는 요즘 그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을지 걱정되었다.

‘최근에는 새끼도 낳았던데. 역시 한 번쯤 확인해 봐야겠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걸음을 옮기던 중, 맛있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아무래도 네로가 벌써 주방에 들어간 듯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르긴 해도 슬슬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할 시간이기는 했다.

또 북쪽 마법사들이 배고프다며 칭얼거리기라도 한 건가. 고작 밥 차려달라는 이유로 자는 사람을 깨우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행동이지만, 하도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파우스트 또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구나. 그런데, 이 생각 전에도 한 적이 있지 않나.’

마침 고양이들을 위한 보양식도 필요하겠다, 파우스트는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식당으로 향했다. 뜻밖에 식당에는 네로밖에 없었다. 마법관 전체가 잠잠한 것이 미스라를 제외한 북쪽 마법사들은 꿈나라에 있고, 아침 일찍 단련을 하는 마법사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았다.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다. 네로는 오늘도 여러 개의 조리기구를 한 번에 다루며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역시 대단했다. 수업이나 훈련을 할 때도 이만한 집중력을 발휘해 주었으면 좀 좋겠냐마는, 요즘에 와서는 바랄 걸 바라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사람마다 각자 관심분야와 특기분야가 모두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네로, 아침부터 고생이 많아.”

“아, 선생. 좋은 아침이야.”

다가가 인사를 하자 네로는 반갑게 파우스트를 맞이해주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서 네로를 마주한 파우스트의 표정은 오히려 흐려졌다.

“좋은 아침, 이라고 할까. 너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데.”

네로는 어찌나 안색이 나쁜지 눈 밑에 검은 안개가 드리워진 듯했다. 불행 중 다행히 특별히 아픈 곳은 없는 것 같고, 대신 밤잠을 약간 설친 것처럼 보였다. 짚이는 것이 있었던 파우스트는 숨기지 않고 걱정을 드러냈다.

“안색이 안 좋고 피곤해 보여. 어젯밤에 아래층이 소란스럽던데, 그것과 관련 있는 일인가?”

“아아…… 있었지. 곤란한 일이.”

돌아온 것은 적당한 긍정이었다. 피로한 눈가를 문지른 네로는 불 위에서 구워지는 프라이팬을 연속으로 세 개 뒤집었다.

“선생이 잠이 얕다는 사실을 잊었어. 정말 작은 소리로도 쉽게 깨는구나. 불침번을 서는데 익숙한 사람처럼.”

“……뭐.”

꽤나 허를 찌르는 말이었다. 정작 말을 꺼낸 당사자는 아무런 생각도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파우스트는 몰래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또 누가 너를 찾아갔구나. 늦은 밤에 개인적인 부탁으로 사람을 고생시키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나 보군. 거절하기 힘들다면 내가 따끔하게 일러둘까.”

“……정말 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어쩐지 조금 감동이야, 선생.”

웬일로 네로는 거절하지 않았다. 실제로 파우스트가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그의 제안에 위로를 받은 것 같았다. 수면 부족으로 기운 없는 호박색 눈동자를 조금이나마 빛내는 것에 선생으로서 반드시 해내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쳤다.

“너는 내 친구이자 학생이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나 의리가 넘치다니, 선생은 가만 보면 동쪽의 마법사 답지 않다니까.”

“…….”

지레 찔린 파우스트는 그냥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때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주방에 들어왔다. 다름 아닌 브래들리였다. 브래들리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옷 위로 배를 벅벅 긁더니, 곧 입맛을 다시며 조리된 음식을 멋대로 집어먹었다.

네로가 브래들리의 목덜미를 붙잡고 설교를 늘어놓았지만, 전혀 새겨듣는 기색이 없었다. 남이 자신을 붙잡고 만류하든 말든, 방금 막 일어난 주제에 기어이 입맛을 돋우겠다고 튀긴 음식을 주워 먹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북쪽 마법사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받고 싸우는 것만큼이나 식탐이 무시무시했다. 이걸로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먼저 찾아갈 수고를 덜었으니 잘된 일이다.

“이봐, 브래들리.”

“뭐냐, 저주상.”

브래들리는 네로에게 목을 졸리면서 툭 내뱉듯 대답했다. 꽤나 건성인 태도였지만, 여기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파우스트는 팔짱을 끼며 브래들리에게 따졌다.

“야밤에 네로를 찾아가는 건 그만둬. 수면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엥?”

그 말에 사심을 가득 담아 브래들리의 멱살을 쥐고 흔들던 네로의 손아귀가 느슨해졌다. 어쩐지 네로의 반응이 이상했다. 파우스트가 그쪽에 신경을 쓰기도 전에 브래들리가 먼저 선수를 쳤다.

“내가 이 녀석을 찾아가든 말든, 동쪽 나라 저주상 씨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

“그렇지 않아. 네로는 나의…….”

그 말을 할 때, 브래들리는 사람을 놀리는 듯한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에 기분이 상한 파우스트가 반박하려는 순간이었다.

“아니,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선생! 오해야, 브래드는 잘못하지 않았어!”

불쑥 끼어든 네로가 양팔을 벌리고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브래들리를 등 뒤에 숨기고 완전히 싸고도는 태도였다. 네로의 필사적인 행동에 파우스트는 더욱 알쏭달쏭한 표정이 되었다.

“……브래드? 언제 그런 애칭을.”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 잊어줘!”

“오늘따라 이상하네, 네로. 자꾸 허둥대고.”

“미안하지만 더 이상 파고들지 말아 줘…….”

“내가 잘못한 건가?”

영문을 모르는 파우스트는 섭섭함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열심히 안면 근육에 힘을 주었다. 브래들리는 네로의 등 뒤에서 혀를 깨물며 웃음을 참았고, 네로는 파우스트를 보며 어쩔 줄을 몰랐다. 정황상 간밤에 네로를 찾아간 것은 브래들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럼 대체 누구지? 파우스트는 전혀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네로를 보며 슬픈 고양이처럼 한껏 눈썹을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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