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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04

ㅇㅅㅇ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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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임시제목. 나중에 몰아서 수정함. 상당히 저속함.

옆에서 샤일록이 곧바로 빈 잔을 채워주었다. 근처에서는 무르가 목욕하면서 춤추는 고릴라처럼 빙글빙글 회전하며 사방에 물을 튀기고 있었다.

“원래 유흥이란 사람이 많을수록 즐거운 거잖아요.”

“말이나 못 하면.”

네로가 신음했다. 그들이 익히 아는 네로치고는 따끔한 핀잔이었다. 그는 아직도 고개를 들지 못했는데, 이쯤 되면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알몸의 피가로’를 봐서는 안 될 다른 이유가 있는 듯했다.

“가능하면 소수 인원으로 조용히 즐기고 싶었어…….”

샤일록더러 들으라고 한 말이겠지만, 정작 반응한 건 다른 사람이었다. 피가로는 헐거운 수건 매듭을 조이며 열기가 올라오는 탕으로 향했다.

“이미 늦었어. 여기까지 왔는데 알몸으로 돌아갈 순 없잖아.”

듣는 사람이 곤란한 정도로 애교 섞인 비음이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피가로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다들 제대로 인사도 안 해주고, 피가로 선생님 너무너무 서운해!”라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그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미스라는 다시금 물속에 잠수했고, 브래들리는 오늘만 벌써 두 번째 토하는 시늉을 했다. 어차피 알 거 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뭐 하러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하다 했더니, 맞은편에서 사정을 모르는 클로에가 동그랗게 뜬 눈을 끔벅거리고 있었다.

“……부탁이니 오해를 살만한 발언은 자제해 줘.”

얼굴을 덮은 손바닥 너머로 만면을 일그러뜨린 네로는 정말로 힘들어 보였다. 파우스트는 어쩔 수 없이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환기했다. 그대로 얌전히 묻혀갔으면 좀 좋았겠냐마는, 네로는 끝내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왜 아무도 놀라지 않는 거야?”

그 말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웠다.

“그 피가로가 여성의 몸으로 남탕에 들어왔잖아! 서쪽의 마법사는 그렇다 쳐도 나, 나머지는? 하다못해 클로에는?”

갑작스럽게 화제에 오른 클로에가 자신을 가리키며 “나?” 하고 반문했다. 물론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클로에는 뺨을 손끝으로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 민망하긴 한데…… 이럴 때 오히려 강하게 반응하면 피가로도 부끄러울 것 같아서.”

“자기가 좋아서 들어온 거잖아! 저 녀석이 부끄러울 게 뭐가 있어?”

“네로…….”

아이와 동물을 사랑하는 음침한 동쪽 마법사 같지 않은 과격한 말투였다. 파우스트는 답지 않은 네로의 언행에 미간을 짚었다. 피가로가 여성의 몸을 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단체로 장난을 쳤던 몇 달 전이나, 하다못해 몇 시간 전에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지금처럼 극렬한 거부는 역효과를 낳았다. 아무리 봐도 피가로와 모종의 사건이 있었다고 밖에 의심이 가지 않았다. 그것 봐라, 비밀스러운 사건의 냄새를 맡은 서쪽 마법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브래들리는 그 부분을 정확히 지적했다.

“왜 그렇게 요란한 반응을 보이는 거야? 저 모습을 한 피가로가 네 취향이기라도 한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 누가 저런……!”

네로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삿대질했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 강하게 부정했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피가로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넘겼으면 모를까, 날 선 반응을 보이니 오히려 사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듣자 하니 정말 무례하네. 눈앞에 당사자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 상대를 마구 깎아내려도 되는 거야? 게다가 나는 현자님을 위해 저주를 독박 쓰고 이 지경이 되었는데…….”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탄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쉰 피가로가 비틀거리며 레녹스의 어깨에 기댔다. 그러나 레녹스는 쓰러지는 피가로를 잡아주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눈을 돌리며 목석처럼 뻣뻣하게 서있을 뿐이다.

“죄,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누가 봐도 장난이었지만, 그 장난에 낭패를 겪는 당사자는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다.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네로는 대역 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뭐야아, 그렇게 겁에 질려있으면 꼭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가엾은 네로는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주눅 든 어깨가 소나기 맞은 잎사귀처럼 축 처졌다. 그는 젊은 시절에 여자랑 말 한 번 못 섞어본 남자처럼 상대의 기에 완벽하게 찍어 눌려 있었다. 네로가 여성한테 약했던가. 고민해 봤지만 특별히 그런 기억은 없었다.

어쩌면 네로는 피가로를 어려워하는 걸 수도 있다. 최근 피가로는 네로를 놀리는 일에 맛 들여있었다. 피가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파우스트는 확신할 수 있었다.

피가로는 원래도 짓궂고 경박한 구석이 있었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집요하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직접적으로 묻기보다는 은근슬쩍 떠보는 게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네로에겐 미안한 일이나, 만약 피가로가 정말로 네로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면 직전의 대처는 좋지 않았다. 그런 어설픈 반응은 피가로의 가학심을 부추길 뿐이었다.

“네로 말이 맞아, 클로에.”

이것 봐라, 피가로는 벌써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서 날뛰고 있었다. 그는 휘청거리던 몸을 바로 세우고 단단히 묶은 수건 매듭을 붙잡았다.

“사내들이 우글거리는 소굴에 내 발로 직접 들어온 거니까 원한다면 마음껏 봐도 좋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쓰레기 같잖아…….” 네로가 물속에 반쯤 잠수하며 중얼거렸으나, 소리가 너무 작아 대다수는 듣지 못한듯했다. 한편, 피가로는 네로가 무슨 말을 하든 그저 싱글벙글 웃을 뿐이었다. 설마 정말로 여기서 벗을 셈은 아니겠지. 파우스트는 불안한 눈빛을 던졌을 때였다. 피가로가 몸을 가려주던 단 한 장의 수건을 단숨에 벗어던진 것은.

“우와아아아악!”

“피가로 선생님!”

그 행동 한 번에 동시다발적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고,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부릅떴으며, 누군가는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의사 양반, 제법 화끈한데.”

이것만큼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브래들리가 높은 휘파람을 불었다. 피가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의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자세를 취했다. 아까 파우스트 앞에서 선보인 것과는 전혀 다른 자세였다.

“그, 그렇다면 모처럼이니까.”

한참을 쩔쩔매던 클로에는 라스티카의 조용한 응원과 지지를 받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클로에는 부끄러움을 떨쳐내지 못했는지 수줍은 시선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피가로의 전신을 훑었다. 그러고는 서둘러 고개를 돌려 아무 변화 없이 평화로운 수면을 내려다봤다.

“피가로는 37-24-36이구나. 그야말로 이상적이네! 아니,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을지도…….”

클로에는 수줍음을 타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생각해 보면 클로에는 늘 그랬다. 클로에의 말을 들은 피가로는 자신의 몸을 더듬―네로가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잘 모르겠는데. 그 정도쯤 되지 않을까?”

“어떻게 정확하게 아는 거야. 그쪽이 더 소름 끼친다고.”

브래들리가 혀를 내둘렀다. 과연 관련 직업을 가진 사람은 눈썰미부터 달랐다. 클로에는 브래들리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온기가 올라오는 탕 속에서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허공에 종이와 펜을 불러냈다. 마법으로 명령을 받은 펜은 저절로 움직이며 종이에 어떤 그림을 슥슥 그렸다.

“가슴 쪽은 조금 넉넉하게, 허리는 타이트하게 조이면 어떨까? 여기, 한 번 봐줄래? 피가로가 선호할 만한 스타일을 빠르게 추려봤어.”

클로에의 스케치는 이미 다 구상이 끝난 것처럼 굉장히 빨랐다. 순식간에 완성된 수십 장의 스케치가 피가로를 향해 날아갔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어차피 하루면 풀릴 거야. 굳이 번거롭게 만들고 싶지 않아.”

“전혀 번거롭지 않아! 오히려 나로서는 다양한 스타일을 연구해 볼 좋은 기회인걸. 괜찮다면 나한테 맡겨주었으면 좋겠어.”

클로에는 답지 않게 언성을 높였다. 몹시 흥분한 그는 탕의 열기 때문인지 묘하게 뺨도 붉어져있었다. 클로에의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린 라스티카는 마법으로 차가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열을 식혀주었다.

“그런 부분은 잘 모르니까 알아서 해줘.”

피가로는 열의에 불타는 클로에를 보며 난처하게 웃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의 혈기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네.” 따위의 불필요한 말을 잊지 않고 덧붙였다.

파우스트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피부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한숨을 쉬었다. 처음과 달리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는 욕탕에서 전과 같은 평화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때, 부드럽게 물살을 가르며 다가온 브래들리가 자연스럽게 네로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네로, 너는 여전하구나.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사내로서 끌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저 모습의 피가로는 좋은 여자잖아, 어디까지나 겉보기로는.”

“브래들리, 너야말로 사심 있는 거 아니야?”

오늘만 벌써 수차례 놀림을 당한 네로는 상당히 언짢은 상태였다. 브래들리를 노려보는 눈길이 자못 매서웠다. 브래들리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는 것으로 네로의 시선을 흘려보내곤 다시 저속한 화제로 그를 끌어들였다.

“있을 리가 없지. 눈요기가 되면 뭐해. 어차피 알맹이가 피가로잖냐. 그놈 상대로 성적 흥분 같은 걸 느낄 리가 없지.”

“야, 아무리 그래도 당사자가 앞에 있는데…….”

네로는 끝까지 피가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브래들리를 밀어내며 이를 갈았다. 연이은 소란에 완전히 지친 네로는 피가로가 못 들은 척 넘어가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포함된 화제를 얌전히 듣고 있을 피가로가 아니었다.

“왜? 지금의 나는 꽤 네 취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연상의 여인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잖아, 브래들리는.”

“젠장, 네 입으로 말하지 마. 구역질 나니까.”

“토할 거면 나가서 해줄래요? 당신 토사물 속에서 헤엄치고 싶지 않으니까.”

욕지거리를 내뱉기 무섭게 전신욕을 즐기고 있던 미스라가 잇따라 참전했다. 하여간 북쪽의 마법사는 서로를 자극하는 재주가 있었다. 네로와 브래들리, 그리고 피가로까지는 괜찮다. 이들이라면 대화하는 중간에 기분이 상하더라도 마도구를 소환하며 싸우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나 미스라가 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제로 벌써 기류가 일변했다. 미스라가 불평을 토로하기 무섭게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스라, 네놈은 뭘 그리 태연하게 있는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피가로잖아. 너라면 적어도 한 마디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이 타이밍에 브래들리가 발언권을 가지는 건 좋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한 파우스트가 무슨 말이든 하려 할 때였다. 미스라는 말 그대로 대수롭지 않게 코웃음 쳤다.

“피가로의 알몸이요? 익숙한 게 당연하죠. 난 치렛타와 오래 알고 지냈잖아요.”

“치렛타라고 하면 루틸과 미틸의 어머니지? 미틸이 언제나 어머니 이야기를 하잖아.”

그 말을 들은 브래들리는 입을 꾹 닫았다. 딱 봐도 듣기 싫은 농담을 하려다 플로레스 형제를 봐서 선을 지킨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 여자랑 피가로 알몸이 무슨 관계인데?”

“그야 치렛타가 피가로를 가까이 뒀으니까요.”

최종적으로 미스라가 인상을 확 썼다. 그것도 모르냐는 식이었다. 미스라는 더 이상 대답하기 싫은 듯했지만 이미 호기심이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스라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피가로와 치렛타의 분위기가 수상쩍은 것이다.

피가로는 짚이는 게 있는지 지레 찔린 얼굴이 되었으나, 대화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머리 위에 의문부호를 띄우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무르만이 “헤에.” 하고 목을 울렸다. 안타깝게도 이 중에서 말귀를 알아들은 건 무르밖에 없는 듯했다.

“지금 나만 이해가 안 되는 거냐? 무슨 맥락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결국 참다못한 브래들리가 성질을 부렸다. 아니나 다를까, 미스라는 지긋지긋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꾸 묻지 마요, 귀찮게. 얼마나 더 자세히 말해줘야 하나요? 두 사람, 자주 몸을 섞었다고요.”

“…….”

이번에는 브래들리조차 할 말을 잃었다. 쥐 죽은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동상처럼 굳어버린 사람들 틈에서 냅다 폭탄을 투하한 미스라만이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치렛타도 취향이 나쁘죠. 저런 남자의 어디가 좋다고.”

“어머, 싫다~ 미스라. 나만 뭐라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지 않을래? 내 어디가 부족하다는 걸까? 하다못해 너 같은 녀석도 제자로 받았는걸.”

“싸우자는 건가요?”

대체 뭘 잘했다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건지. 누군가는 부정해 주기를 바랐으나, 피가로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오해에 한층 박차를 가했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오해 하지 마. 치렛타가 결혼한 뒤에는 제대로 손 씻었으니까.”

“뭐…… 그 마녀, 남자 취향이 썩 좋지 않다는 건 알겠네.”

빠르게 오가는 대화를 경청하던 브래들리가 중얼거렸다.

“이거야 원, 이 자리에 루틸과 미틸이 없어서 다행이군요.”

후끈하게 달궈진 공기에 절로 땀이 배어났다. 열심히 손부채질을 하는 샤일록은 어째선지 들뜬 목소리였다. 어처구니없는 대화의 향연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특히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줄줄이 주입당하고 있는 네로는 딱 죽을 맛이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남의 뒤틀린 연애관과 복잡한 가정사에 흥미를 느끼는 건 서쪽의 마법사들뿐이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서툰 동쪽의 마법사로선 무엇이든 폭로하는 이 분위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야 플로레스 형제를 볼 낯이 없다. 형제가 사랑하는 어머니와 존경하는 보호자의 비밀스러운 관계를 알아버린 이상, 루틸과 미틸을 볼 때마다 매번 생각이 날 것 같았다. 울상을 지은 네로는 단 한 명의 구원자를 찾았다.

“아무리 그래도 나만 낯을 가리는 건 이상하지 않아? 그, 그래, 선생은? 선생은 나를 이해하지?”

“이해는 하지. 나 같아도 갑작스럽게 모르는 여자의 나신을 보게 됐다면 당황스러웠을 거야.”

“……응?”

전혀 기대하던 반응이 아니었다. 네로는 한순간 굳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어떤 어조로 했는지 모르는 파우스트는 태연하게 머리카락 끝에 맺힌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냈다.

“하지만 상대는 피가로잖아.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제 와서 놀라고 당황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

파우스트는 네로가 낯선 사람을 보듯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곧장 두 번째 폭탄을 투하했다.

“…….”

아무도, 정말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파우스트는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있는 이 상황에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뭐야, 네로.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 두 사람이 언제 혼욕을 했나 싶어서…….”

“무슨 소리야? 혼욕 같은 건…….”

주위를 둘러본 파우스트는 그제야 실수를 깨달았다. 도합 몇 쌍인지 모를 시선이 전부 파우스트에게 꽂혀있었다. 특히 서쪽 마법사들의 의외라는 눈빛은 아주 가관이었다. 그들은 마치 얌전한 고양이가 먼저 부뚜막에 오른 것처럼 강렬한 흥미를 나타내고 있었다.

파우스트는 갑자기 모든 여유를 잃었다. 착실히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던 욕탕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물 밖으로 뛰쳐나가 빠르게 몸을 헹구기 시작했다. 현명한 파우스트는 어떤 변명을 해도 사람들을 납득시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럴듯한 말로 둘러대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럴 때는 그저 잊히기를 바라면서 서둘러 도망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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