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 16


“아닙니다. 여기 있겠습니다.”

“어차피 파우스트가 부탁했겠지. 그 아이에게는 알아서 둘러댈 테니 내 눈치 볼 것 없다는 거야.”

레녹스는 잠시 멍을 때렸다. 맥락을 보건대 정곡을 찔려 당황한 것 같다. 이런 때마저도 표정 변화가 전혀 없어 오히려 무서울 정도였다.

“……부탁을 받은 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피가로님 옆에 남아있고 싶습니다.”

“어째서.”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한심한 이유였다.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피가로는 레녹스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 낯을 굳혔다.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 들은 탓에 맥이 탁 풀렸다.

“너도 참 희한하구나.”

그 말을 들은 레녹스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멍하다 못해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왜 그런 표정이지?”

“아뇨, 자주 듣는 말이라서…….”

피가로는 대차게 콧방귀를 뀌었다. 덕분에 우울한 마음이 싹 가셔버렸다. 처음부터 이것을 노린 거라면 대단히 영리한 녀석이었다.

피가로는 난간에 반쯤 매달린 채 레녹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위대하신 현인이 체통 없이 액체 괴물처럼 녹아있는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분명 뭐가 문제인지도 모를 것이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주제에 영 귀염성이 없었다. 피가로는 눈앞의 아이로 무료함을 달랠까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런 무뚝뚝한 성격은 취향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마시아 열매처럼 새빨간 눈이 오즈를 떠올리게 해서 기분 나빴다.


인기척이 없는 복도는 적막했다. 파우스트는 한적한 복도를 거닐며 쾌재를 불렀다. 그는 방금까지 알렉과 함께 있었다. 레녹스를 통해 부름을 받았을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지만, 알렉은 실제로 파우스트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혁명이 막바지에 이른 요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단둘이 있는 시간은 오랜만이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심히 불안했던 알렉의 상태는 올해 들어 부쩍 나아졌다. 파우스트가 곁에 없으면 어쩔 줄 모르던 것이 거짓말처럼, 지금은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알렉은 정말 대단하다. 신체 일부를, 그것도 오른팔을 잃었음에도 머지않아 모두가 믿고 따르는 흠잡을 데 없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자리에 있는 게 파우스트 본인이었다면 절대 알렉처럼 무던하게 굴지 못했을 터였다.

알렉은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지만, 파우스트가 몸담은 혁명군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알렉이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게 기뻤다. 오늘은 그가 다시 예전처럼 대해주는 게 좋아서 참지 못하고 마셔버렸다.

실컷 마신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최근 음주는 자제하고 있다. 물론 금주는 아니었다. 많이 마셔봤자 목을 축이는 정도였다. 평소에는 살짝 들뜰 정도만 마시다가 분위기를 탔을 때만 조금 더 마셨다.

계기가 된 것은 작년의 연회였다. 피가로가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번 흥을 참지 못하고 끝까지 달린 적이 있었다. 무슨 추태를 보였는지는 모르나, 눈을 뜨자마자 무언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날 마주한 피가로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그 점이 무서웠다. 지난밤에 대해 넌지시 물어봐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날 밤의 일을 기억에서 송두리째 도려낸 것처럼.

잘은 모르겠지만 말도 못 하게 끔찍했음이 틀림없다. 엄청나게 두려워서 레녹스에게도 물어보지 못했다. 스승의 입버릇처럼,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다. 피가로 앞에서 심각한 추태를 보였다면 도저히 얼굴을 들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그날 밤의 일은 영원히 미궁 속에 묻혔다. 왜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파우스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늦게까지 이어지던 연회가 마무리된 요새는 고요했으며, 밤은 서서히 깊어갔다. 슬슬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그전에 피가로님께 인사를 드리고, 부탁을 들어준 레노에게는 감사를 전하자.

피가로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본 스승은 무척 멀게 느껴졌다. 원래도 손에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당장이라도 떠나버릴 듯했다. 하늘하늘한 그 사람을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누군가 붙잡아주었으면 했다.

멋대로 맡기고 가긴 했지만, 레녹스에게 피가로는 까마득히 높으신 분이다. 자기보다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을 불편하게 여기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하물며 레녹스는 말주변이 없으니까, 아마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역시 미안한 짓을 했다.

오늘따라 유독 길게 느껴지는 복도만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계속되었다.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잡념에 휩싸여있던 파우스트는 빠르게 접근하는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사각지대에 있던 사람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가까스로 멈춰 서긴 했으나, 상대의 풍족한 가슴에 튕겨나갔다. 비틀거리는 파우스트를 맞은편의 사람이 두 손으로 단단히 붙들었다.

고작 살덩이에 밀려났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파우스트의 머리 위로 어두운 그늘이 드리웠다. 그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파우스트님.”

“아, 레노구나.”

파우스트는 가슴팍에 손을 얹는 것으로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진심으로 당황한 그와 달리 레녹스는 낯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마침 찾고 있었습니다. 파우스트님, 잠깐 괜찮으신가요?”

“무슨 일이지?”

레녹스는 말을 하려다 말고 어딘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파우스트의 목이었다.

“그 목걸이, 못 보던 거네요.”

“아아, 이거 말인가.” 중얼거린 파우스트가 쇄골을 더듬었다. 그는 목에 걸린 얇은 끈을 손으로 쥐며 수줍게 웃었다.

“알렉이 선물로 주었어. 잘 어울리나?”

“네, 어울립니다.”

“같은 칭찬이어도 네게 들으니 더욱 각별하게 느껴지는군.”

파우스트는 목걸이를 다시 옷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엇나간 주제를 되돌렸다.

“그래, 피가로님은?”

“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끝까지 배웅해 드리려고 했는데, 절대 싫다며 거절하셔서요.”

“레노, 너도 참……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지. 그래서, 볼 일이라는 건?”

레녹스가 아, 하고 목을 울렸다. 목적이 있어 찾고 있었으면서 그새 잊어버린 모양이다.

“피가로님과 관련된 일입니다만.”

“피가로님의…….”

피가로의 이름이 나오기 무섭게 파우스트는 본능적으로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을 법한 곳을 찾아 레녹스의 팔을 잡아끌었다. 레녹스의 입에서 피가로의 이름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파우스트가 생각하기에 레녹스가 절대 언급하지 않을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피가로였다. 너무 자연스럽게 입에 담아서 이상한 줄도 몰랐다.

“주제넘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파우스트님께선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마른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파우스트는 잔뜩 긴장했다. 레녹스의 느린 말이 이렇게까지 감당이 안 되었던 적이 없었다. 다행히 레녹스는 파우스트의 초조함을 읽은 것처럼 빠르게 말을 이었다.

“피가로님께선, 이곳을 떠나실 생각이신가 봅니다.”

“……이곳이라는 건?”

“아마도 혁명군을. 그리고…….”

“나의, 우리의 곁을 말인가?”

레녹스는 “네…….” 하고 우물거렸다. 그는 드물게 파우스트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불편한 감정이 드러났을 수도 있다. 깨닫고 나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레녹스의 말은 파우스트의 불안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가 말한 것에 대해선 짚이는 바가 있었다. 최근에, 바로 직전까지 파우스트도 비슷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레녹스가 같은 경험을 한 것은 의외였다. 파우스트가 아는 피가로는 빈틈이 없으니까, 자신의 종자인 레녹스를 상대로는 절대 빈틈을 보이지 않을 줄 알았다.

한편으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같은 부분에서 결핍을 가진 사람끼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결핍이 없는 사람이기에 더욱 빠르게 깨닫는 부분이 존재한다.

전란의 시대에 태어난 것치고 레녹스는 비교적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만큼 마냥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대다수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레녹스의 그런 순수한 면이 피가로를 자극했을 수도 있다. 그래봤자 추측에 불과하지만.

“레노, 피가로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해?”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

때로는 몇 번 보고 말, 가벼운 사이이기에 솔직해지는 경우도 존재한다. 만약 피가로가 레녹스에게 어떠한 암시를 주었다면, 그래서 이런 부분에 한없이 둔감한 레녹스조차 직감을 느낀 거라면.

차라리 듣지 않는 편이 나았을 정도로 속이 답답했다.

“레녹스, 너도 피가로님이 아무런 언질도 없이 떠나실 것 같아?”

“조금은…….”

“확실하게 말해줘. 그렇게 느꼈어?”

“……네. 파우스트님도 같은 생각을 하셨나요?”

“모르겠어. 기우라고 하고 싶지만…….”

공기가 무거웠다. 커다란 창을 통해 드리우던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져, 빛이 없는 복도는 캄캄한 어둠에 잠겼다. 파우스트는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냈고, 레녹스는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 레녹스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저는, 피가로님께서 누군가 자신을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표현은 파우스트님의 스승이자 위대한 마법사인 그분에게 실례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레녹스의 말이 옳았다. 레녹스는 대체로 둔하지만, 가끔은 놀라운 적중률을 보였다. 불확실한 일에 말을 아끼는 레녹스가 피가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이미 그 말에 공감했다. 머리로는 일찍이 이해했지만, 내심 부정하고 싶었다.

“정말 이상하지. 단 한 번도 그분이 나를 두고 떠나실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당연히 평생 내 곁에 있어주실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파우스트는 꽉 막힌 숨을 연달아 몰아쉬며 마른 세수를 했다.

“……고마워, 레녹스. 피가로님과 대화해 볼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분을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 사람의 존재가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다. 관계에 이득이 있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그분이 좋았다. 함께 있으면 편하고 의지가 되었다. 마력이 담긴 별사탕처럼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사람이었다. 그 별사탕이 혀 위에서 녹아내리듯, 고작 한두 해 알고 지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피가로는 파우스트의 삶에 깊이 스며들었다.

피가로를 바꾸고 싶은 건 그 사람에 의해 자신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서투른 마법을 안정시키고,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오르는 법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은 거였다. 설령 이 생이 다할 때까지 갚을 수 없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깨달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피가로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이별을 상정하기엔 이미 잔뜩 마음을 줘버렸다. 가족 같은 사람이었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아버지처럼,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사람이었다.

파우스트에게는 과분한 사람이다. 피가로님을 만나 그분의 제자로 들어간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었다. 과욕은 화를 부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존재했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우스트는 무엇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랐다. 그들의 길을 열어주고, 행복을 안겨주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더 나아가, 자신 또한 그들의 존재로 충만함을 느끼고 싶었다.

알렉과 레녹스, 피가로님, 그리고 다른 동료들까지. 모두 함께 지금처럼 가까이 지내고 싶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혁명의 성패와 관련 없이 이 삶이 허락하는 한 언제까지고 계속.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 평생토록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욕심이라면, 나는 기꺼이 욕심쟁이가 되겠어.’

파우스트 라비니아라는 사람은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마법사로 태어나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조차 받아들여지지 못한 반푼이였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했다. 언제나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부족할 수는 있지만 결코 못난 사람은 아니었다.

욕심을 부리는 것은 그릇된 일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결말을 바라기 마련이다. 모두를 자신의 곁에 붙잡아두는 것이 욕심일지라도, 그들이 실망하고 떠나가지 않도록 몇 배는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붙잡을 것이다. 더 이상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걷어차는 멍청한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악착같이 매달려서 반드시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것이다.

“바로 피가로님께 가시나요?”

“그래, 그전에 레노, 네게도 할 말이 있어.”

한 번 마음을 먹으니 그다음은 훨씬 쉬웠다. 파우스트는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을 입 밖에 내었다.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그러니 내 여동생을 만나주었으면 해. 낯을 많이 가리지만 착한 아이야. 먼저 진지하게 만나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다시 생각해 주면 좋겠어.”

예상대로 레녹스는 놀란 표정이었다. 레녹스의 기분이 이해가 갔다. 처음으로 묘안을 떠올렸을 때, 파우스트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저는 괜찮지만, 파우스트님의 동생분께선…….”

“네가 얼마나 괜찮은 남자인지는 내가 보증해. 그 애는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거야. 나를 닮아 보는 눈이 있는 아이니까.”

“과분한 칭찬이네요.”

“그렇지 않아. 자신감을 가져.”

“알겠습니다. 혁명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맞죠?”

레녹스의 물음에 파우스트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고맙다, 잘 생각해 주었어.”

언뜻 보면 혈육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편이 그녀에게 더 좋았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다. 혁명을 무사히 마무리 지으면 알렉은 중앙 국가의 왕위에 오른다. 파우스트는 누구보다 가까운 신하로서 평생 알렉을 모시고 보필하며 살고 싶었다. 모두의 염원을 짊어진 알렉이 마침내 이상을 펼치고, 그의 왕국이 번영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알렉의 사후, 소중한 친우를 떠올리게 하는 장소를 버티지 못하고 중앙을 떠나게 될지라도, 알렉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싶었다.

알렉의 곁을 지키는 건 파우스트의 선택이었다. 파우스트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고, 당연히 수많은 혼담이 오갈 것이다. 제 한 몸 정도는 어떻게 챙기더라도 가족까지 온전히 보호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므로 여동생에게 믿음직한 혼약자를 미리 만들어두는 일이 필요했다. 마침 레녹스는 성품이 곧고 우직하여 흠잡을 데가 없었다. 누구도 마다하지 않는 일등 신랑감이었다.

물론 레녹스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말도 진심이었다. 가족이라는 연으로 더욱 끈끈하게 맺어진다면 두려움 없이 보다 안정적으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파우스트가 보기에 레녹스 또한 마음 둘 거처를 찾고 있는 듯했다. 인간과는 다른 마법사의 기나긴 삶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것은 레녹스도 마찬가지였다. 남 말 할 처지는 못 되지만, 그런 레녹스에게 의지가 되고 싶었다. 부족한 자신을 믿고 따라준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파우스트님, 평안한 밤 되세요.”

“너도.”

레녹스가 이런 억지를 받아들여줘서 다행이었다. 덕분에 한시름 덜었다. 파우스트는 꾸벅 인사하는 레녹스의 어깨를 친밀하게 두드리며, 피가로가 머무는 방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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