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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프로토콜:#N/A 15

관계 프로토콜:#N/A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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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 나중에 몰아서 수정. 순서 싹 바뀔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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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죽지도 않고 또 돌아온 폴몬트 아침마당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오늘도 아나운서 젠이 금주의 핫한 소식을 안방에 전해드립니다.」

빨강, 초록, 파랑. 풍선껌처럼 화려한 그라데이션 머리를 한 여성 아나운서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나운서는 화면을 향해 열렬하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우선 화제의 어시스트로이드 정보입니다. 폴몬트 라보라토리의 가르시아 박사님과 연결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가르시아 박사님.」

경쾌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빈 공간에 새로운 화면이 떠올랐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연구실을 배경으로 서 있는 건 온화한 미소를 띤 남성이었다. ‘가르시아 박사’라고 불린 남성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피가로 가르시아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폴몬트 라보라토리에서 어시스트로이드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나운서는 존재하지 않는 청중을 의식하는 것처럼 귓가에 둥글게 손을 얹었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반응을 기다렸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함성이나 박수 소리 따위의 효과음이 깔렸다. 아나운서는 갈채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빠르게 진행을 이어갔다.

「가르시아 박사님은 ‘어시스트로이드’의 아버지라 불리시죠? 자아 없는 AI를 보다 인간과 가까운 형태로, 단순한 가사활동 도우미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책임질 ‘친구’로. 맞죠?」

「그렇죠.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네요.」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유명한 ‘어시스트로이드’를 만든 폴몬트 라보라토리의 선전 문구인걸요. 저희처럼 이슈에 민감한 언론인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죠, 헴.」

아나운서는 일부러 어깨를 넓게 펴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언뜻 교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아나운서는 쇼맨십을 발휘해 노련하게 상황을 넘겼다. 마찬가지로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익숙한 가르시아 박사 또한 아나운서의 재치를 능청스럽게 받았다.

「하하, 반응이 좋은데요. 이건 홍보문구를 귀에 쏙쏙 박히게 잘 짰다고 생각해도 되려나.」

「어라, 이러면 광고팀에 보너스 들어가나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홍보문구를 짠 건 마케팅 부서가 아니라 저라서. 본인한테 상 주는 것도 가능한지 상부에 건의해 볼까요?」

「앗, 그런 문제라면 제 얘기는 빼주시면 안 될까요? 폴몬트 라보라토리에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지 않거든요.」

두 사람은 스크린 너머로 시선을 맞추며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어색하지도, 경박하지도 않은, 보여주려는 의도가 분명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금방 긴장이 풀리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즈음 아나운서는 천천히 본론을 꺼내들었다.

「가르시아 박사님은 굉장히 어린 나이부터 연구를 시작하셨잖아요. 처음으로 ‘어시스트로이드’를 구상하고, 실제 개발에 착수했을 때 어떤 심정이셨나요?」

「어시스트로이드를 처음 개발할 때라…… 그러네요. 무엇이든 처음은 중요하죠.」

가르시아 박사의 시선이 허공을 방황했다. 가르시아 박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듯 열 손가락을 얽으며 뜸을 들였다.

「기본적인 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요. 마침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기쁨,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 느끼는 희열. 일종의 자기긍정감 같은 거요.」

아나운서는 눈을 크게 뜬 채 “자기긍정감.”이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세간에서 가르시아 박사님은 자수성가의 표본이라 불리고 있는데요. 이 소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두 번의 망설임은 없었다. 가르시아 박사는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앉으며 말했다.

「너무 고마운 평가죠. 그만큼 제가 이 분야에서 성공을 일궈냈다는 뜻이니까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연구자로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된다는 건 다시없을 영예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가르시아 박사님! 섹시한 지적 인물 랭킹 상위권을 차지하고 계실만 하네요. 이 랭킹에 공중파에 출현하는 연예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등재되는 건 처음 보거든요.」

「하하, 마냥 기뻐하고 싶지만…… 역시 ‘최초’는 아니죠? 하트 박사님이 계시니까.」

가르시아 박사의 말에 아나운서는 깜짝 놀라 손뼉을 쳤다.

「어머, 가르시아 박사님 하트 박사님과 구면이신가요? 전혀 생각도 못 해봤어요! 그러고 보니 두 분은 같은 계열사에 소속되어 있었죠?」

가르시아 박사는 난처하게 웃으면서도 착실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하트 박사님은 폴몬트 라보라토리의 대표이자 폴몬트 종합연구기관의 이사장직을 겸임하고 계시니까요. 이를테면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거겠죠.」

「아아, 그런 거라면 자세히 물어볼 수 없겠네요. 지금 이 인터뷰는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으니까!」

「네에, 양해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저, 이래 봐도 평범한 월급쟁이거든요. 이렇게 탁 트인 자리에선 좋은 말도, 나쁜 말도 할 수 없어요. 다만, 꼬박꼬박 통장에 월급을 넣어주시는 고마운 분이라는 사실만 말해두겠습니다.」

아나운서가 “아하하.” 낭랑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 웃음소리는 꾸며낸 것처럼 작위적이었지만, 결코 거부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폴몬트 라보라토리는 굴지의 대기업이잖아요? 그 정도쯤 되는 기업이 월급이 밀리면 국제 정세의 위기라고요.」

「그 말도 맞네요. 여러분, 폴몬트 라보라토리는 오늘도 건재합니다.」

가르시아 박사는 어깨와 수평이 되도록 들어 올린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고, 그 모습을 본 아나운서가 다시 한번 소리 내어 웃었다. 이어 가르시아 박사가 따라 웃으며 서로 다른 미성이 조화롭게 뒤섞였다.

배경음처럼 깔린 가상의 웃음소리가 파도처럼 휩쓸려간 뒤, 아나운서가 앉아있는 스튜디오는 평온을 되찾았다. 잔잔한 침묵 속에서 가르시아 박사가 다시금 운을 떼었다.

「지금에서야 자수성가의 표본으로 불리고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갑작스럽게 부모의 유산을 물려받아 벼락출세한 운 좋은 고아…… 정도였죠, 아마.」

「정말 너무한 이야기예요. 가르시아 박사님도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텐데.」

이번에는 안타까운 아우성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신음 같은 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가운데, 눈썹을 늘어뜨린 가르시아 박사가 처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그런 터무니없는 비방에 일일이 마음 아파할 정도로 여린 사람은 아니니까. 뭐랄까, 이런 말은 조금 웃길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나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위기를 기회로.’ 같은 건가요?」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사이답게 두 사람은 훌륭한 티키타카를 보여주었다. 마치 미리 대본이 짜여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죠. 역시 게스트 입장에서 젠은 진행이 능숙해서 편하다니까요.」

「앗? 가르시아 박사님의 칭찬이라니, 이거 귀한데요? 미리 말씀해 주셨다면 녹음을 했을 텐데!」

「하하, 지금 녹음하지 않아도 따로 녹화본이 남아있겠죠. 그걸로 하시면 어떨까요?」

「현장이 중요한 거라고요, 현장이!」

일부러 투정을 부리듯 유치하게 말한 아나운서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방청객들이 재차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나운서는 입막음을 하듯 검지를 입가에 대고 “쉿, 쉿!” 하고 작게 속삭였다.

아나운서의 필사적인 지휘 아래, 구색만 갖춘 방청석의 소란은 금방 진정되었다. 아나운서는 손짓 한 번으로 가르시아 박사의 영상 화면을 더욱 크게 키웠다.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 있으신가요? 앞으로의 방향성이나 각오 등을 들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가르시아 박사는 여전히 웃음을 띤 채였다. 그러나 아나운서와 장난을 칠 때와는 달리, 훨씬 진지하고 열띤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된 편이라지만, 어시스트로이드는 아직도 기체의 높은 가격과 지속적인 유지 관리비 때문에 제대로 상용화되어 있지 않죠. 저는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어시스트로이드를 보급하는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모양 좋은 입술이 벌어지며 모나지 않은 부드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시스트로이드는 그저 물건이 아니라 때로는 친구처럼, 가족이나 애인처럼 인간과 소통하고 고독을 덜어줄 수 있는 소중한 삶의 반려입니다. 지금도 이 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고통받고 있을까요? 저는 어느 쪽으로 보나 비용을 낮추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경험을 쌓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시스트로이드 자체의 성능을 최상으로 유지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이 추임새를 넣던 아나운서가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굉장히 어려운 길처럼 느껴지는데요. 간단하게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얼마나 큰 결심을 하셨을지 저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네요.」

「물론 쉽지 않겠죠. 실제로 오랫동안 막다른 길에 놓여있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체의 내구도나 퀄리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더 합리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 아마 제 평생의 연구과제일 것 같네요.」

가르시아 박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켜보고 있을 사람들을 향해 가벼운 윙크를 날렸다. 하루의 대다수를 칙칙한 연구실에 처박혀 보내는 연구원 답지 않게 상큼한 미소였다.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나운서가 보란 듯이 박수를 쳤다.

「가르시아 박사님의 좋은 말씀을 마지막으로 집중 취재를 마치겠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신 가르시아 박사님께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고막을 가득 채운 박수갈채는 금방 멎었다. 그리고 찾아온 건 암전. 순식간에 온 세상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갑작스러운 현상이었지만, 피가로는 당황하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답답하기는커녕 이유 모를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발밑이 붕 뜬 기분이었다. 피가로는 사소한 의문을 모두 내려놓고 턱 밑의 푹신한 무언가에 얼굴을 묻었다. 그대로 꾸물거리고 있으니 느닷없이 익숙한 목소리가 확 치고 들어왔다.

“피가로야, 피가로야, 어서 일어나렴!”

“밤새 잠이 안 온다고 칭얼거리더니, 기어이 녹방을 켜두고 잠들었나 보구나. 으이구, 그렇게 잠들기가 힘들면 병원에 가서 약이라도 받아오라니까!”

어린아이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드러난 팔에 부드러운 살갗이 감겼다. 피가로를 붙잡은 손은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처럼 적당한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피가로는 한참을 뒤척거리다, 자꾸만 자신을 건드는 누군가를 끌어당겨 품에 넣었다.

다짜고짜 붙잡힌 이는 당황한 신음을 흘렸다. 상대는 본능적으로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피가로는 손에 쥔 것을 놓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실랑이는 길지 않았다. 피가로에게 인형처럼 안긴 아이는 이윽고 낮은 웃음을 흘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얘 좀 보게. 힘이 아주 장사야. 운동이랑 악력은 전혀 관계없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구먼.”

“차라리 다행 아닌감. 부실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 힘이라도 좋아야지.”

올이 얇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손가락 틈으로 바삭바삭 소리를 내었다. 제때 자르지 않아 길게 자란 앞머리가 사정없이 눈가를 찔렀다. 아이들은 따갑고 가려운 느낌에 몸서리치는 피가로를 보며 까르르 소리 내어 웃었다.

“피가로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린아이 같구나.”

“벌써 서른인데 언제쯤 철들꼬?”

피가로를 툭툭 건드리며 장난치던 그들은 곧 잊고 있던 게 떠오른 것처럼 동시에 이마를 때렸다.

“스노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니. 일단은 저 애를 깨우기부터 해야지! 피가로쨩, 오늘 인터뷰가 있잖아! 대본은 다 외운 게야? 한 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자고 있으면 어떡하니?”

“으휴~ 기껏 깨워줘도 전혀 듣지를 못해요. 장소를 이동할 필요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리 말 걸어도 소용없다니까. 이거 봐, 귀를 막고 있는데 어떻게 듣겠어?”

누군가가 귓불을 잡아 늘리고, 다른 한 명이 야무진 손길로 살집 없는 볼을 꼬집었다. 우는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으나, 슬슬 아팠다. 이미 잠은 다 깼지만 조금 더 자고 싶었다.

피가로는 이를 박박 갈며 자신을 괴롭히는 손을 대충 쳐냈다. 그런 저항이 무색하게도, 양쪽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앗기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피가로!”

“……일어났어요.”

이어폰이 제 기능을 잃은 건 한참 전이다. 부스스하게 눈을 뜬 피가로는 가장 먼저 까맣게 물든 모니터를 쳐다봤다.

며칠 전에 촬영한 인터뷰의 녹화 방송이었다. 촬영을 한 지는 꽤 되었지만, 최근까지는 도통 녹화분을 확인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방송 화면에선 적절한 조명과 전문가의 보정 솜씨로 간신히 사람 꼴을 하고 있었으나, 검은 화면에는 연이은 철야에 완전히 녹초가 된 자신이 비쳤다. 과연 현실과 환상의 경계라고 부를만했다.

“제 알람시계는 여전히 성능이 좋네요. 자의적 판단으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다는 점은 다소 취향을 탈 것 같지만.”

다행히 스노우와 화이트는 피가로가 깨어나자 괴롭히는 것을 멈췄다. 피가로는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스노우의 품에서 벗어났다. 이 나이를 먹고 타인의 온기를 찾아 매달렸다는 사실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인터뷰는 알아서 할 테니까 이만 들어가셔도 돼요. 스케줄은 확인하셨나요?”

“확인하긴 뭘 확인해? 건네줘야 보든 말든 하지.”

“존재하지도 않는 걸 우리가 어떻게 확인하겠남.”

배배 꼬인 심기를 풀어내기 위해 말을 돌렸으나, 반응이 영 시큰둥했다. 꼭 저렇게 꼽을 주듯 말해야 하나. 핀잔을 듣고 괜스레 무안해진 피가로는 입을 비죽였다.

전날 밤에 짜둔 표를 잊지 않고 공유해 줬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요즘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기실,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폴몬트 라보라토리에 입사한 뒤로 언제고 바쁘지 않은 적이 없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사건사고의 연속이요, 넘치는 열정을 부실한 몸뚱이가 따라가지 못하는 탓―“제발 제때 잠 좀 자, 피가로. 너처럼 살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한 달이면 몸이 축날 거야.” 오죽하면 라스티카가 친구로서 진심 어린 충고를 해준 적도 있었다―에 매일 과로로 쓰러질 지경이었다.

“……착오가 있었나 봐요. 지금 바로 스케줄 공유해 드릴게요. 일단 오늘은 오후에 자리를 비울 예정이라는 것만 알아두시면 돼요.”

“응응, 잘 도착했구먼.”

스노우와 화이트는 피가로가 보내준 스케줄을 확인하며 동시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답지 않게 꼼꼼하게 살펴보던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갸웃거렸다.

“벌써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날이던가?”

“네에, 뭐…….”

피가로는 일부러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쌍둥이가 무슨 말을 건넬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처럼 아끼는 아이를 놀려먹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피가로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우리가 지도해 줘야지!”

“그래그래, 저번에는 말도 없이 빠져서 선생님을 바람맞히지 않았는고?”

“누구 때문에 빼먹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두 분이 그날 싸우지만 않았어도 아무런 문제 없었을 거라고요.”

“이걸 우리 탓을 하니 황당하구먼. 그럼 다른 날을 잡으면 되지 않는감.”

“전화는 뒀다 국 끓여먹을 셈인고?”

그들은 말 한마디 지지 않았다. 누가 회로와 품번이 같은 쌍둥이 아니랄까 봐, 2 대 1로 싸우는 자신만 불리했다.

“됐어요. 두 분한테 이의를 제기한 제 잘못이죠.”

“자학은 좋지 않대도.”

“안 좋은 습관은 고치기로 하지 않았니?”

“…….”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어디 가서도 들어본 적 없다. 그러나 밑도 끝도 없이 사람을 긁어대는 그들을 상대하고 있으려니 자꾸만 주먹이 울었다.

그래도 부모나 다름없는 이를 냅다 주먹으로 갈 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피가로는 들숨날숨을 빠르게 반복하며 화를 가라앉혔다.

“제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두 분은 무엇을 하고 계실 건가요?”

“우리?”

쌍둥이가 서로를 마주 봤다. 피가로의 내면에 몰아치는 풍파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눈빛이었다.

“피가로가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때워야겠지.”

“낮잠이나 잘까?”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피가로는 부루퉁한 얼굴로 턱을 괴었다.

“지겹지도 않아요? 그러지 말고 뭐든 해보세요. 모처럼의 자유니까.”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말을 하기 무섭게 쌍둥이가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피가로는 흠칫 놀라 고개를 숙였다.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무리 그래도 ‘자유’라는 단어만큼은 입 밖에 내선 안 되는 거였다. 두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으면서.

“말은 그렇게 해도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얼마 없다는 걸 알고 있잖니?”

“미스라나 오웬, 클로에가 있었을 때라면 또 모르겠지만…….”

어깨를 움츠린 피가로가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스노우와 화이트는 몸을 돌리고 이 자리에 그들밖에 없는 것처럼 단둘이 대화를 나누었다.

“확실히, 그땐 좋았지. 지금처럼 제약이 많지도 않았고.”

“연구소 전체가 우리의 놀이터가 아니었겠나.”

쌍둥이는 두 다리를 의자 위로 올린 채 한껏 웅크리고 있는 피가로를 곁눈질했다.

“클로에 그 애도 참 무정하지. 인사 한 마디 없이 라스티카를 따라 가버리고 말이야.”

“현명한 거야. 여기 남아있어 봤자 오웬처럼 되었을 테니.”

참아야 한다. 스노우님과 화이트님은 오랜 감금 생활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두 분의 언짢은 심기가 가라앉으면 그때 다시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자.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실천하는 건 어려웠다.

“지금 그 이야기가 왜 나와요? 그 애랑은 상관없잖아요. 오웬은 지금 합당한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요!”

쌍둥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돌아온 건 단지 차가운 비웃음뿐이다. 한순간 눈앞이 컴컴하게 물들었다. 얄팍한 시기와 질투, 서운함, 그리고 앞의 모든 것을 덮을 정도로 강렬한 분노. 울컥 솟구치는 건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집합체였다.

“어차피 두 분은 다른 사람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시잖아요. 하늘 아래 서로만 있으면 충분한 주제에.”

막을 새도 없이 본심이 욱하고 터져 나왔다. 처음 스노우와 화이트를 만들 때에는 그들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랐다. 다시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랐고, 그 대신 서로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전부 배제해도 상관없었다. 두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어시스트로이드는 인간을 고독이라는 필연적인 불행에서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피가로는 자신이 만든 그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한심하게 쳐다보고, 우습게 여기는 건 괜찮았다. 자신의 곁에 머무는 것에 의구심을 품고, 그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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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작

    가르박 다정하게(?) 깨워주는 장면까지만 해도 이번 실험은 정말 성공인가 했는데 역시 마음을 가진 로봇을 만들면서 창조주를 우선해주길 바라는 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바람인 거겠죠ㅠ_ㅠ 사실 쌍둥이의 말이 막 선을 넘은 것도 아닌데(이전에 화이트로이드가 자살(?)하던 장면과 비교하면) 가르박이 너무 불쾌해하는 게… 하필이면 스위치를 정통으로 건드렸구나 싶으면서도 가르박이 지금 정말 정신적으로 한계인 것 같이 보여서 안타깝게 느껴져요 잠을 자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해라 가르박아.
    쌍둥이의 행복과 안녕을 바라면서도 그들이 그들만으로 온전하고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건 견디지 못하는 모순적인 가르박이 어리석고 가여워요….😭🫠

  2. 지난 화도 같이 보고 왔는데 과연 가르박한테 스노화는 부모가 맞네요.
    멀 때는 그립지만 가까우면 좀 학을 뗄 수도 있는 부분이…
    가르박이 스노화 어시스트로이드랑 본체랑 다른 사람이라는 걸 못 받아들이는 건지 스노화를 본 따 만든 도구라는 자각이 있는 건지 둘 다 인 건지 앞으로의 내용도 기대돼요
    도부가로 도부가로 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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