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프로토콜:#N/A 11


날조.


“아아, 맞다. 그랬었죠. 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피가로는 산만하게 몸을 흔들다 금방 손뼉을 마주쳤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파우스트가 막내 생활을 오래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얼마 안 지나서 금방 신입이 들어왔거든요.”

파우스트가 입사하고 한 해가 지나서, 레녹스가 후임으로 들어왔다. 오랫동안 미래를 고민했다던 레녹스는 파우스트를 따라 진로를 결정했다고 했다. 그에 대해선 확실히 짚이는 바가 있었다.

아카데미 재학 시절, 레녹스는 파우스트에게 이 길이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다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파우스트는 성심성의껏 고민을 들어주었고, 그의 진중한 태도에 크게 감화된 레녹스는 다시 학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결국 가르시아 박사의 꿈이 파우스트의 꿈으로, 파우스트의 꿈이 레녹스의 꿈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서로의 꿈이 돌고 돌아 하나로 이어진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울림인지. 파우스트는 그것을 운명이라 믿었다. 뭐, 엄연히 말해 레녹스의 꿈은 그들의 꿈과는 약간 결이 다르긴 했지만.

어찌 됐든 파우스트는 레녹스의 입사를 대단히 기뻐했다. 폴몬트 라보라토리의 싸늘한 분위기는 1년이 지나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좀처럼 사람을 만나기 힘든 지경이었다. 연이은 격무에도 이성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보다 몇 배는 더 성실한 가르시아 부장이 언제나 옆에서 지도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이 각자도생의 회사에서 드디어 친한 동료가 생긴 것이다. 가르시아 부장과 함께 일반 사원 좀비가 되면서까지 격렬하게 일하고 있던 파우스트는 새로운 신입의 존재를 쌍수 들고 환영했다.

자연스럽게 가르시아 부장의 라인에 배치된 레녹스는 굉장히 훌륭한 신입이었다. 파우스트처럼 일머리가 뛰어나진 않았지만, 적응이 빠르고 무슨 일이든 우는소리 없이 담담하게 해냈다.

오죽하면 그 성실함과 우직함에, 까탈스러운 가르시아 부장조차 “이거 물건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금 질투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이자 아카데미 선배이자 직장 후배인 레녹스의 평가가 높아지는 것을 보니 자신의 일처럼 자랑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카르디아 시스템 프로토타입에 대한 연구 지령이 내려왔다. 파우스트는 가르시아 부장이 공문을 확인할 때 우연히 같은 장소에 있었다. 마침 같이 날밤을 샌 가르시아 부장에게 쌉쌀한 커피와 달콤한 각성제―“제발 그만…….” 담당의는 앓는 소리를 내었다―를 대접하던 참이었다.

“카르디아 시스템, 인가…….”

공문을 확인한 가르시아 부장은 미간을 누르며 신음했다. 조신한 손길로 상사의 책상에 가져온 물건을 내려놓은 파우스트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 말을 들었다.

카르디아 시스템! 가르시아 부장의 밑에서 온갖 발 닦개―최고의 업무이자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역할을 한 지 어언 1년. 마침내 예의 카르디아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까지 가르시아 부장을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보좌해온 파우스트는 그가 연구하고 있는 것이 카르디아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류를 구원할, 가르시아 부장만의 방법. 관계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아가 상실과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해답.

상부의 지원을 받으면 지금보다 수월하게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기뻐해도 될 텐데, 가르시아 부장은 어딘가 탐탁잖은 듯했다. 가르시아 부장은 젊은 나이에 그만한 직급에 올라서도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심기가 불편할 때는 웬만한 직장 상사 못지않게 예민해지곤 했다. 눈치를 보던 파우스트는 직속 상사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것을 보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가르시아 부장은 원격 회의를 열어 부하들을 소집했다.

“혹시 지원할 사람 있어?”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의 얼굴이 포도 알갱이처럼 하나둘씩 떠올랐다. 그러나 막상 그들을 둘러싼 분위기는 온통 침묵 일색이었다. 어느 누구도 선뜻 손을 들지 않고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오로지 파우스트만이 오랜 밤샘으로 퀭한 눈을 빛내며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레녹스도 손을 들었다. 레녹스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그러나 이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답지 않게 건강하게 또렷한 눈빛으로 똑바로 화면 너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적어도 아무 생각 없이 덩달아 손을 든 것 같지는 않았다.

두 명이나 자발적으로 나섰지만, 가르시아 부장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엄격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지원할 사람이 없으면 임의로 배정할 수밖에 없어.”

“부장님, 지원자가 있는 것 같은데요.”

마찬가지로 초췌한 낯짝을 한 동료가 다른 화면에서 파우스트와 레녹스를 가리켰다.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역할을 떠넘기고 싶었으면, 일부러 화면 위치를 신경 쓰며 어렵게도 삿대질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파우스트와 레녹스는 꿋꿋하게 손을 들고 있었다.

한 해 동안 다녀본 결과, 그들이 재직 중인 폴몬트 라보라토리는 철저한 실적 위주로 운영되었다. 파우스트는 과거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카르디아 시스템의 흔적을 확인했다. 카르디아 시스템은 이미 폴몬트 랩에서 한차례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연구는 명확한 실적을 올리지 못한 채, 현재 그와 관련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퇴직한 상태였다. 하다못해 그 유명한 라스티카 페르치조차도.

가르시아 부장이 아직까지 카르디아 시스템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파우스트를 포함한 극소수에 불과했다. 당사자인 가르시아 부장이 그 사실을 숨기고 있는 탓에, 지능기계정보부에서 카르디아 시스템은 일종의 괴담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그 일로 소중한 동기를 잃은 가르시아 부장조차도 손절한 최악의 연구로 말이다.

가르시아 부장이 공문 내용을 밝혔을 때부터 사람들의 반응은 영 시들시들했다. 회의에 참여한 모두가 이 연구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단지 개인의 욕구를 위해 입사한 사람도, 연구 설비를 합법적으로 빌리기 위해 입사한 사람도,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큰 뜻을 품고 입사한 사람도. 누구도 카르디아 시스템에 관여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카르디아 시스템은 아무리 파고들어봤자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무의미한 연구였다. 지금도 어시스트로이드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속출하는 판국이다. 그런 마당에 감정을 가진 어시스트로이드를 제작한다니, 설령 연구가 성공한다고 해도 생명윤리부터 시작해 여러모로 걸리는 문제가 많았다.

애초에 카르디아 시스템은 해석이 몹시 난해하고 취급이 까다로웠다. 연구 과정도 순탄치 않은데, 비용은 쓸데없이 많이 들고, 우연히 좋은 결실을 맺는다 해도 승진 가능성은 희박했다. 오히려 모든 책임을 떠안고 상부의 압박에 못 이겨 사표를 쓰게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르시아 부장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라니. 회사에서 그 같은 인재를 놓칠 리 없으니, 결국 아랫사람이 덤터기를 쓰는 게 당연한 구조였다.

그야말로 말단의 비애였지만, 파우스트는 그런 사소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카르디아 시스템은 파우스트의 새로운 꿈과 바짝 맞닿아있었고, 그는 카르디아 시스템이 인류 구원의 초석이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파우스트는 모두가 마다하는 이 연구를 어떻게 해서든 성공으로 이끌고 싶었다.

그러나 어째선지 가르시아 부장은 파우스트를 쳐다보지 않았다. 처음엔 기분 탓으로 여겼지만, 곧 그것이 아주 노골적인 무시임을 깨달았다. 참다못한 파우스트가 입을 열었다.

“부장님, 저와 레녹스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개인 메시지가 날아왔다.

「신입이 맡을 일이 아니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가만히 있으면 다른 사람이 끌려갈 테니 얼른 발 빼.」

「아무리 부장님을 존경해도 그렇지, 이건 아니야. 이 일 하루 이틀 하고 말 것도 아닌데 이성적으로 굴어야지. 선임으로서 충고할 테니 말 들어, 라비니아 씨.」

「파우스트, 원래라면 누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든 알 바 아닌데, 네가 지금까지 우리 일까지 처리해 준 게 고마워서 알려주는 거야. 출세를 노린다면 차라리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해. 카르디아 시스템에 연관되었다간 얼마 못 가서 목만 떠내려올걸?」

「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도망가도망가도망가도망가」

그간 쌓아온 인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누구 말대로 고집 세고 괴팍하며 제멋대로인 연구원들이 하나같이 합심하여 파우스트를 만류했다. 연달아 쇄도하는 메시지에 가르시아 부장의 얼굴이 완전히 가려졌다. 파우스트는 창을 좌우로 가르며 가르시아 부장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조정했다.

옆으로 옮겨간 메시지창 뒤편에서 나타난 가르시아 부장은 웃는 것도, 찌푸린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입이 다룰 만한 안건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미리 말하지만 난 추천하지 않아.”

“이전부터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연구였습니다. 맡겨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라비니아 씨는 언제나 기합이 넘치네. 모두가 꺼리는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준다면 나야 고맙지.”

파우스트는 가르시아 부장이 어설프게 웃는 모습을 보며 입사 초기를 떠올렸다. 파우스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가르시아 부장은 까슬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네. 대신 내가 전력으로 지원할게. 앞으로의 일정은 차차 상의해 보자. 라비니아 씨랑 레녹스는 잠깐 내 랩으로 오고, 나머지는 각자 볼일 봐.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

정말 그게 끝이었다.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원격 회의는 종료되었다. 발언할 틈도 없이 다짜고짜 끊겨버린 통화에 동료들이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옆에서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레녹스가 고개를 들고 파우스트를 쳐다봤다. 레녹스와 눈이 마주친 파우스트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녹스, 너까지 참여할 필요는 없었는데.”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인 걸요. 카르디아 시스템이라고 하면 선배가 특히 관심 있는 연구였죠?”

“그래,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오늘만을 기다려왔어.”

“믿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파우스트 선배니까.”

그들은 가르시아 부장의 개인 랩으로 이동하는 동안 자잘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가르시아 부장님은 이상하게 선배를 이름으로 안 불러주시네요.”

“그러게.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걸까?”

“그럴 리가요. 파우스트 선배는 완벽하십니다.”

“완벽이라니, 그런 말은 하는 거 아니야.”

레녹스는 여전히 넉살이 좋았다. 레녹스가 폴몬트 라보라토리에 입사한 지 어느덧 넉 달이 지났다. 아카데미 시절에도 레녹스에게 딱히 존대를 하지 않은 만큼, 반대로 그가 자신에게 깍듯하게 구는 것이 가끔은 어색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러는 레노, 너야말로 언제쯤 말을 편하게 해줄 거야?”

“전 지금도 편한걸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대로가 좋아요.”

“네가 편하다면 나도 굳이 강요는 안 하겠지만…….”

두 사람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쿵,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에 맞춰 피가로가 입을 열었다.

“카르디아 시스템을 연구하라는 윗선의 공문은, 솔직히 당황스러웠어요. 카르디아 시스템은 공식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되어있거든요. 연구를 더 이어갈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상세히 보고했을 텐데, 1년이 지나서 다시 지령을 내리다니……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걸까요?”

팔짱을 낀 피가로는 “이사장이 워낙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니,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닌가.”라고 중얼거렸다.

“파우스트 씨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문득 담당의가 물었다.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피가로는 눈을 깜박이고는 조금 멋쩍게 대답했다.

“아뇨, 그런 건 딱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레녹스가 특이 케이스인 거예요. 레노에게는 처음부터 이상하리만치 친숙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담당의는 잠시 고민하다가 거듭 물었다.

“파우스트 씨가 입사할 즈음, 카르디아 시스템은 이미 완성되었다고 했죠? 그렇다면 그 이후에 연구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제 설명이 부족했나 보네요. 윗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해요. 작년 제 랩에서 발생한 사고도 확실하게 은폐했고, 카르디아 시스템을 연구하던 동료들의 입막음도 모두 제대로 해놨거든요. 비록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잃었지만, 당시에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머리를 주억거리며 이야기를 듣던 담당의는 별안간 눈을 크게 떴다. 뇌리를 스친 어떠한 가능성에, 그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설마 앞서 말한 동료들의 집단 퇴사라는 게…….”

“서, 설마요! 그 정도로 입김이 세진 않아요.”

피가로는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선생님은 안 그렇게 생겨선 무서운 상상을 하신다니까.”

어찌나 당황했는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의사가 되어서 환자를 곤란하게 만들다니, 쩔쩔매는 모습을 보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담당의는 서둘러 표정을 되돌리며, 계속 말하라는 듯 조심스럽게 손짓으로 권유했다.

다행히 피가로는 금방 원래 주제로 돌아왔다.

“지금부터가 진짜 중요한 대목이네요. 이걸 제 입으로 말하려니 참담한 기분이지만, 고해성사하는 느낌으로 어떻게든 해볼게요. 무엇이든 말을 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선생님이 그러셨으니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알고 계시죠?”

“그럼요.”

장난스러운 대화를 주고받던 것이 거짓말처럼, 피가로는 다시 침울한 기운을 풍겼다. 담당의는 흐트러진 자세를 고쳐 앉으며 소리 없이 응원했다. 피가로는 가슴에 손을 얹고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안일함이 불러온 참사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1년 전에도 카르디아 시스템은 많은 연구원들이 매달린 프로젝트였어요. 이제 막 입사한 신입 둘이 결단코 결과를 낼 수 있는 과제가 아니란 뜻이죠. 다른 부하들이 생각한 것처럼 연구의 실패는 예정된 일이었고, 희생양을 고르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어요. 제가 아끼는 유능한 부하들이 희생되는 건 원치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죠.”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지, 왼쪽 이마를 문지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제 유일한 실수는 하필 그때 두 사람을 프로젝트의 정식 일원으로 승인한 거예요. 저는 두 사람에게 카르디아 시스템에 대해 전혀 알리지 않았어요. 하다못해 그것의 위험성조차도 말이죠. 아직 젊은 인재들이니까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스스로 손을 떼고 물러날 줄 알았던 거예요. 하지만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어요. 파우스트와 레녹스가 어느 정도 재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약간의 힌트만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 줄은…….”

피가로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헛숨을 들이켰다. 존재조차 불분명한 신에게 기도를 올리듯, 핏기가 가실 정도로 강하게 맞잡은 두 손을 들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대로예요. 두 사람은 카르디아 시스템을 완성시켰어요. 불안정한 형태였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최초의 성공이나 다름없었죠. 그렇게 파우스트와 레녹스가 만든 기체는 결국 폭주했고, 사고를 일으킨 겁니다.”

고작 지난주의 일이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피가로는 깍지 낀 손을 펼쳐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늦은 밤, 아니, 새벽이었던 것 같아요. 긴 연휴를 앞두고 있던 터라 랩에 남아있던 사람은 저와 그 두 사람밖에 없었죠. 저는 개인 랩 안쪽에서 화이트님을 점검하고 있었고, 파우스트와 레녹스는 진척을 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었어요. 새빨간 불이 들어오고, 계속 비상 호출이 울렸어요. 연구소 전체에 시끄럽게 앵앵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파우스트가 레녹스와 함께 본격적으로 카르디아 시스템의 연구에 돌입하기 전, 가르시아 부장은 그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우선, 이건 내 랩으로 이어지는 비상벨이야.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걸로 나를 불러. 너희가 최악의 경험을 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테니까.”

파우스트는 가르시아 부장이 건네는 장치를 받아들었다. 손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리모컨은 가운데에 빨간 버튼이 달려있었다.

카르디아 시스템이 그 정도로 위험한 연구인가? 일순 의문이 들었으나, 가르시아 부장은 파우스트보다 먼저 카르디아 시스템의 연구에 발을 담그고 있던 사람이었다. 어째서 상부에 비밀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을 따라서 해가 될 것은 없을 터였다.

“파우스트, 네게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전수할게. 나머지는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는 기초 시스템을 이용하면 돼. 그랑벨 시리즈 A 타입, A-GRANVELLE-001의 성공 사례, 알고 있지?”

그것은 권위자의 달콤한 제안이었다. 가르시아 부장의 말은 마음속에 남아있던 일말의 불안과 의심을 시원하게 날려주었다. 가르시아 부장은 자신의 뒤를 잇는 후임의 등을 두드리지도, 시선을 마주하지도 않았지만, 파우스트는 알 수 있었다.

가르시아 부장은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손안에 알맞게 들어오는 비상벨은 직전까지 가르시아 부장이 쥐고 있었는지 아직 희미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그 온기는 마치 ‘신뢰하고 있으니 그에 걸맞은 결과를 보여달라.’라고 말하는 듯했다.

파우스트는 가르시아 부장이 보고 있든 말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동료들이 파우스트를 만류할 때, 가르시아 부장은 신입에 불과한 그를 믿고 지지해 주었다. 가르시아 부장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면서 파우스트는 확신을 가졌다. 그에게는 파우스트와 같은 결핍이 있었다. 무의식중에 그들은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끌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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